<디폴트Default>, 사용자 모델을 재구성하기 위한 (과도기적인) 전략들
권시우
포스트 인터넷 아트는 사용자의 보편적인 경험을 현실 내외에서 재현하는 데 천착했지만, 스마트폰 출시를 기점으로 미디어 환경은 급속도로 다변화했고 재현의 문법은 이를 수렴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므로 국내에서 디지털 기반의 작업들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어 세대적인 담론을 구성한 시점은 포스트 인터넷 아트의 전제가 무효화된 이후로 설정해야할 것이다. 이를 얼마만큼 자각하고 있었는지와 별개로, 신생공간이 활성화됐던 당시에 활동했던 몇몇 작가들은 자신이 체감하고 있는 사용자 경험을 동력 삼아 작업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재현의 문법과는 미묘하게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이를테면 분명 디지털 이미지에 착안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원본과는 전혀 다른, 혹은 원본을 유추할 수 없는 형태로 제시됐다. 나는 그러한 작업들을 한때 ‘운석들’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에게 디지털 환경이란 일상적으로 접속하고 휴대하는 편의적인 대상인 동시에 외계外界나 다름없는 불가해한 영역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1) 열화된 이미지들. 디지털의 파본들. 의도적으로 실패한 재현의 결과물들은 불시착한 운석들처럼 어딘지 모르게 엉성한 모양새로 전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현의 실패는 작업의 질적인 가치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실패는 오히려 작가가 의도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일련의 작업들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과 가상 간의 합리적인 상관관계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열화의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디지털 환경에 대한) ‘나’의 제한된 엑세스를 표명하는 것이다. 사용자-작가가 디지털 이미지를 열화, 즉 대상의 내적 구조를 비합리적으로 번안하거나 훼손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디지털 이미지가 현실상에서 온전히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에서 작용하는 각종 물리적인 관성들을 상기시키는 한편, 디지털 환경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로 기능한다. 원본과 작업 사이에 존재하는 사용자-작가의 인터페이스는 사실 가상성 자체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현실상에서 ‘그럴 듯한’ 물성을 부여할 수 있는 자의적인 규칙들을 고안해낼 뿐이다. 열화는 사실 사용자-작가가 현실의 관점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편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차선인 셈이다. 그렇다면 앞선 맥락에서의 인터페이스가 부재했을 때, 사용자는 과연 어떤 식으로 디지털 환경을 경험하게 될까?
김효재의 전시 <디폴트Default>(2018.12.19-29, 원룸ONEROOM)는 별다른 매개 없이 현실을 가상의 영역으로 포섭하려한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나름의 답변으로 구실한다. 동명의 영상 작업 <디폴트Default>는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 김나라(@naras.)를 화자로 내세워 작가가 고안한 ‘디폴트Default'라는 개념에 대해서 서술하는데, ’디폴트‘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서의 특정한 설정치를 뜻하는 기본값이라는 표현에서 착안했으며, 작가의 주장에 따르자면 디지털 환경 내외에서 “한 개인이 최대한 현실 가까이에서 수집하는 정보값”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가상의 계정은 그것과 동기화한 사용자의 현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그/그녀의 정체성을 재구성할 뿐만 아니라, 현실 자체는 그러한 과정에 동원되는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naras는 그에 대한 효과적인 사례인데, 해당 계정에 지속적으로 업로드되는 각종 패션 브랜드에서 협찬 받은 의류 및 아이템을 착장한 인증샷, 매번 다른 패션을 ’착붙‘으로 소화하며 다양한 포즈로 촬영한 스냅샷 등은 하나의 콘텐츠로서의 가상의 계정을 구성하는 요소들인 동시에, 김나라의 일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본 전시에서뿐만 아니라, 회화 작가 지호인과 협업한 프로젝트 ‘서울모범미감’의 책 「S, KR 美感」에 기고한 <자라zara는 왜 마스크를 만들지 않는가?>라는 글에서도 ‘디폴트’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해당 개념의 중요한 전제는 이러하다.
더 이상 “~하는 척, 가상/가짜/허구의 ~인 것, 기믹(gimmick), 의사-(pseudo)”가 통용되는 시점은 지났다. 현실이 가상과 얼마나/어떻게 분리된 세계인가에 대한 물음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현실과 가상이라는 구도는 ‘얼마나 리얼(real)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인가’라는 다음의 숙제를 화면 바깥의 한 개인에게 내주고, 이를 수행하는 개인을 바라본다. 실체 없는 세계에서 현실로 빠져 나온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화면 안에 깜빡 두고 나온 기분을 느끼며, ‘나는 진실로 누구인가’라고 질문하며 스스로의 역할(roll)을 직접 다시 정한다. 이를 통해 가상을 염두에 두고 현실에서 만들어지는 정체성을 경험, 획득하고, 화면 안으로 답을 제시한다. 이는 다시 화면 안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모델(model)로 비친다.2)
인용한 부분의 논지는 <디폴트>의 전시 리플렛에서 청탁 메일의 형식으로, <디폴트>라는 영상 작업에서는 자막을 통해서 반복해서 언급되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디폴트’는 대강의 정의만이 존재할 뿐 체계적으로 확립된 개념 혹은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 가상과 얼마나/어떻게 분리된 세계인가에 대한 물음”에 천착했던 ‘이전’의 고루한 방법론과 단절함으로써 소위 가상성에 대한 새로운 내러티브를 전개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디폴트’는 일종의 선언에 가깝다.) 그러나 ‘디폴트’를 발화함으로써 확보한 여지는 섣불리 서사 차원에서 확장되지 않는다. 작업 <디폴트>는 ‘디폴트’의 표본적인 인물(@naras.)과 (「S, KR 美感」의 독자라면 이미 숙지하고 있을) ‘디폴트’에 대한 대강의 정의만을 전면에 내세우며 ‘디폴트’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판촉할 뿐이다. 이를 방증하듯 본 작업은 2분가량의 짧은 러닝타임 내에서 (이전작인 <난마돌> 시리즈에서의 사변적인 이야기 구조와 대비되는) 간결하고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전시공간인 원룸ONEROOM에 설치된 와이파이(wifi : subscriber KU JI SU)를 경유해 관객 본인의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상에서 현실을 향해 발화되는 일종의 팝업으로 기능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김효재는 본 전시를 ‘디폴트’를 위한 일종의 프로모션으로 상정한 채 협업자들과 함께 주어진 공간에 개입하는데, 이를테면 공간 디자인을 맡은 지호인은 ‘사이버펑크-힙-한방’이라는 컨셉으로 전시장을 새롭게 연출한다. 지호인의 공간 디자인은 컨셉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다소 이질적인데, 원룸ONEROOM에 비치된 화초에서 착안한 꽃무늬 스티커나 @naras.의 유튜브 구독자인 구지수의 글이 프린트된 족자와 같은 요소들을 통해 이전의 ‘서울모범미감’ 프로젝트에서 천착한 서울에서의 특정한 미감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본 전시에서 구현된 서울 미감은 단순히 서울의 맥락 없음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화면 안에서 구축된 자신의 정체성을 잠시 두고 현실로 빠져 나왔을 때 못생김이 의도치 않게 시야 내에 등장하는 서울이라는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미감은 죽어도 포기할 수 없다는 망상”을 하는3) 특정한 사용자가 (서울이라는) 현실의 조건들을 나름대로 미화시킨 결과에 가깝다. 즉 서울의 ‘못생긴’ 풍경은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을 뿐더러, 자라zara를 포함한 각종 패션 브랜드의 웹사이트를 서핑하며 자신의 미감을 정체화한 사용자-개인들 간의 협업에 의해 적당히 취사선택되고 리믹스remix된 채 마침내 ‘힙’한 무대-공간으로 완성된다. 전시장 전반에 드리운 초록색이 감도는 조명이나 테이블을 덮고 있는 벨벳 천, 김동용이 작곡한 공간의 BGM4)과 같은 상대적으로 유려한 장식들은 그러한 ‘힙’을 보조하는 장치들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김효재, 지호인이 지향하는 소위 ‘힙스러움’은 (웹과 SNS상에서 생산/유통되는 패션 이미지를 비롯한 ‘그럴싸한’ 시청각적 정보들에 대한) 사용자 경험을 토대로 정체화한 미감의 정서이며, 이는 서울이라는 데이터베이스-현실로부터 발췌한 요소들을 번안한 결과물로 구체화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디폴트’의 과정의 일부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즉 일련의 장식들은 순전히 가상의 관점에서 현실에 개입한 결과로써, ‘사이버펑크-힙-한방’이 의도한 이질성 내지 위화감은 못생김과 못생기지 않음, 촌스러움과 촌스럽지 않음의 미묘한 경계에서 비롯한 장식성을 통해 체감되는 것과 별개로, ‘디폴트’를 운용하는 사용자라는 배후를 암시한다. 그러므로 전시 <디폴트>는 앞서 언급한 열화의 방식과 달리 현실과 가상 간의 극복할 수 없는 낙차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을 (‘디폴트’라는 가설을 통해) 현실에 액세스access하고 그로 인한 변수들을 (서울 미감에 기반한) 장식을 통해 유희하듯 물리적인 공간상에 펼쳐 보인다. 이들은 공간 디자인을 포함해 자신의 사용자 경험을 투영한 결과물들을 (원본에 미치지 못하는) 실패한 성과로 단정하지 않고, ‘서울모범미감’이라는 가상의 컨텐츠의 영역 내에서 조율/조절되는 미적 경험으로 환원한다. 결국 ‘디폴트’를 위한 프로모션 공간은 작업 <디폴트>에서의 판촉을 보다 활성화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화면 안으로” 되먹임되어 다양한 이미지로 제시될 수 있는, 즉 “모델model”이 되기 위해 연출된 유사 무대인 셈이다.
<디폴트Default>(2018.12.19-29, 원룸ONEROOM) 전시 전경
반면 작업 <디폴트>에서 재편집된, @naras.의 유튜브 계정에 공개되지 않은 소위 B컷 영상의 클립들은 “리얼real”한 “모델model”이 되기 위해 현실에서 수반되는 부산스런 과정을 보여준다. 구독자 구지수의 언급에 따르면, “기업체가 되어 움직이는 계정이 아닌 이상, 그러니까 구독자수가 1,000여 명 정도인 ‘NARAS'와 같은 크리에이터는 세트 정비, 카메라 설치, 촬영, 편집 등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한다.”5) 그 과정에서 재구성되는 것은 무엇보다 구독자의 피드백에 반응하며 “대사와 목소리 톤, 그리고 제스처”까지 “미세조정”하는 김나라라는 현실에서의 주체다. 즉 ’디폴트‘의 맥락에서 사용자는 (필자의 표현대로 하자면) 유닛에 자신을 대입함으로써 가상과 일시적으로 동기화하는 대신, 가상의 관점에서 현실에서의 자신을 적극적으로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하며 자신과 유닛의 정체성을 일체화한다. 그 와중에 파생된, “리얼real"하게 조합되지 못한 ’디폴트‘의 부산물들은 대개 공개되지 않거나 언제든지 휴지통에 분류되어 삭제될 수 있는 무가치한 대상에 가깝다. 실제 @naras.를 화자로 내세워 사용자-유닛의 무결한 상태, 즉 ”리얼real"함을 미처 훼손할 수 없는 작가는, 앞선 부산물들을 데이터의 구천으로부터 건져와 (작업 전반에서 부정했던) ’가짜‘를 연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가짜‘인 화자는 의미심장한 타자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단지 팝업의 요소로 소비되는 데 그치며, 영상 내에서 자신의 허위를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를테면 동일한 클립에서 추출한 @naras.의 이미지들은 모핑Morphing 앱을 적용해 (자막의 내용과 대치되는 문장들을 되풀이해 말하는) 내레이션에 따라 인위적으로 입을 움직이며 영상 전반에 간섭하는데, 이는 자신이 작가에 의해 조작당한 채 번번이 오작동할 뿐이라는 사실을 과시하는 한편, (’디폴트‘를 대변할 수 있는) ’진정한‘ 화자는 이미 스스로를 재구성한 채 ”리얼real“한 영역으로 이전됐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처럼 본 작업은 사용자-유닛이라는 실체를 배후에 숨긴 채, 그것에 대한 복선으로 기능하는 말과 동작들을 적절히 배열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한다.
작가가 영상 내에서 “리얼real”하게 조합되지 못한 ‘디폴트’의 부산물만으로 어떤 서사를 구성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앞서 언급했듯 “현실이 가상과 얼마나/어떻게 분리된 세계인가에 대한 물음”에 천착했던 ‘이전’의 고루한 방법론과 의도적으로 단절했기 때문이다. 김지훈이 서술하듯 그간 통용됐던 유닛의 개념이 ”우선적으로는 포스트인터넷 조건이 구성하는 세계에 대면하거나 그 세계로 진입한 주체의 분열적 경험을 지시“하고6), 그것이 에세이 영화의 관습을 빌어 ”사적 현실과 공적 현실, 기억과 관찰, 망상과 논증, 한 지리적 장소와 다른 장소를 넘나들고, 현재를 다층적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의 버전들이 집적되고 교차하는 다층적 레이어로 자아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귀결됐다면7), 전시 <디폴트>가 프로모션하고자 하는 ‘디폴트’라는 개념은 에세이적 자아가 형성될 수 있는 토대 자체를 부정한다. 이를테면 ‘디폴트’에 기반한 사용자 주체는 이미 가상을 ”리얼real"한 것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가상의 객체인) 유닛에게 불능감을 느끼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전’의 내러티브를 추동했던 (현실과 가상 간의) 사이 공간이 발생할 만한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주체의 분열적 경험”을 시각적으로 은유하는 ‘탄력적인 몽타주 기법’이라는 전략 또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작업 <디폴트>는 단지 ‘디폴트’라는 개념을 둘러싼 동어반복적 구조의 일부로, 즉 작가의 의견 내지는 선언을 주지시키기 위한 시청각적인 도구로 환원된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 자신의 실제 자아에 대해서 성찰하는 게 아니라, 유닛과 일체화된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작인 <난마돌> 시리즈는 (‘디폴트’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과도기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작업은 구글, 셔터스톡, 유튜브 등의 가상 플랫폼으로 상징되는, 온갖 이미지와 클립들로 포화 상태인 타임라인을 작가가 상정한 임의의 시제들로 분류하며 (섣불리 분열적 주체로 환원되지 않는) 사용자의 권한을 암시하지만, 이는 결국 ‘난마돌’이라는 픽션에 의해서만 성사될 뿐이다. 무엇보다 ‘난마돌’에 대해서 부연하는 내레이션은 영상 내에서 사용자가 각종 링크들을 넘나들며 이미지-정보를 수렴하는 복잡한 궤적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와 동화된 채 기계음으로 변조된 다양한 목소리 트랙들을 넘나들며 점차 갈피를 잃어버린다. 결과적으로 <난마돌>의 화자는 (디지털 환경에 기반한) 서사를 불안정하게 운용하는 과정에서 재차 사용자 정체성의 근간을 뒤흔든다. 이는 누구든 “포스트인터넷 조건이 구성하는 세계”에 천착하는 순간 분열적 주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재생산되는 시청각적 파편들의 혼란상은 이미 압도적인 클리셰가 된 채 사용자-작가에게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열화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환경과 본질적으로 불화하는 내러티브에 종속돼야만 하는가? <난마돌> 이후의 김효재가 바라는 것은 그러한 폐쇄회로에서 어떤 식으로든 벗어나는 것이고, 전시 <디폴트>는 그에 응수하듯 ‘디폴트’라는 가설을 통해 새로운 사용자 모델을 명시함으로써 서사 자체를 유예한다. 즉 작가는 불확실한 미래로 수렴되는 소위 유닛의 서사와 반목한 채, 사용자가 스스로 현실과 가상을 매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자-유닛에 대한 내러티브의 전조를 구성할 뿐이다.
이로써 현실과 가상 간의 암묵적인 위계는 역전되었다. 기존의 사용자가 디지털 환경과의 동기화 여부와 무관하게 언제나 현실에 정주해있었다면, 그로 인해 가상을 대상화하는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면, ‘디폴트’의 맥락에서 사용자는 이미 가상의 영역을 선점한 채 오히려 현실을 대상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서울을 포함한 현실이 거듭 남루하다고 말하고, 종내 자신이 점유한 현실의 일부, 즉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서울 미감의 전제에 따라) 나름대로 미화함으로써, 현실을 자신의 사용자 경험에 조응하게끔 변조하려한다. 결국 화면 너머의 모든 것은 사용자 정체성을 수식하기 위한 임의적인 재료들일 뿐이며, 작가의 관점에 따르자면 그것들은 대개 어떤 미감을 구현할 수 있는 장식으로 환원된다. 혹은 현실이 ‘그럴싸한’ 시청각적 정보들로 업로드되기 위해선 장식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내러티브는 무엇인가? 대상화된 현실로부터 모종의 장식성을 유추해내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연출하며 화면 내외에서의 자신을 정체화하는 사용자의 경험은 어떤 식으로 새롭게 재현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차후의 작업에서의 관건은 본 전시에서 미처 관여하지 않은/못한 “리얼real”함을 작업의 방법론 차원에서 재구성해 본격적으로 유닛과의 변별점을 가시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팝업 장치로 고안된 작업 <디폴트>는 얼핏 스스로를 가치 절하하며 ‘가짜’의 영역으로 숨는 듯하지만, 본 전시에서의 미적 경험을 재편하는 유력한 소실점으로 기능하며 ‘디폴트’를 반영하는 세계관에 대한 여지를 남겨둔다. 비록 ‘디폴트’에 의해 발생한 서사적 의문은 작업 차원에서 해소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지지하기 위해 동원된 전시 내의 제반 환경에 둘러싸인 채 관객은, 무엇보다 작가 본인은 거듭되는 질문들을 숙고하게 된다.
1) 권시우, <포스트 인터넷, 디지털, 혹은 운석들>, 집단오찬 (https://jipdanochan.com/70?category=650941)
2) 김효재, <자라zara는 왜 마스크를 만들지 않는가?>, 「S, KR 美感」, 32p
3) 김효재, <자라zara는 왜 마스크를 만들지 않는가?>, 「S, KR 美感」, 36p
4) 전시 <디폴트>에 사운드 디렉터로 참여한 김동용은 지호인의 ‘사이버펑크-힙-한방’이라는 컨셉을 재해석한 트랩 비트 기반의 공간의 BGM을 작곡했고, 그와 별도로 영상이 상영되는 웹사이트(imademydefault.com)에 접속하면 (라디오 스트리밍을 통해) 자동 재생되는 음악의 트랙 리스트를 선별했다. 전자의 경우, 여타 장식들과 함께 전시장의 ‘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한편, 초저음/고음의 사운드를 트랙 전반에 삽입하여 관객이 이어폰을 통해 작업 <디폴트>의 사운드를 청취하는 동안에도 공간의 BGM을 의식할 수 있게끔 작업했다. 그러므로 본 전시에서 사운드는 단순히 장식으로만 존재하기보다, 온/오프라인에서의 상이한 경험들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매개하는 등 전시 경험 전반에 관여한다.
5) 구지수, <태스크, ‘디폴트’, 구지수>, 전시 <디폴트Default>에 설치
6) 김지훈, <유닛을 매개하는 에세이적 관습 : 동시대 국내 포스트인터넷 무빙 이미지 아트의 어떤 경향(1)>, 「계간 시청각 2호」, 22p
7) 김지훈, <유닛을 매개하는 에세이적 관습 : 동시대 국내 포스트인터넷 무빙 이미지 아트의 어떤 경향(1)>, 「계간 시청각 2호」, 2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