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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디지털 플랫폼은 비평의 대안적 모델>

<디지털 플랫폼은 비평의 대안적 모델>

이양헌

 

*아트인컬처 2018년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비평을 하나의 순환하는 계절이라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비평이 어떤 계절들을 지나왔고 어디로 향하는지,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한 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비평은 적어도 두 개의 계절을 지나왔다. 처음에 그것은 입말의 세계로서, 개인의 음성이 공론을 통해 일반적 의지에 닿을 수 있는 자율성의 공간이었다. 이는 신분과 위계, 정체성을 무화시키는 말의 향연 혹은 열린 공론장으로서 다원주의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계절에서 비평은 강력한 엘리트주의 아래 담론의 헤게모니를 독점하고 소수의 비평가가 카르텔을 형성하는 텍스트로서의 비평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하나의 텍스트는 아카데미, 저널, 파라텍스트(paratext)에 의해 비평으로 공인되거나 배제당할 수 있었고, 비평가들이 거수한 만장일치의 판단이 곧 최상의 취미가 되는, 그러므로 대중은 오직 침묵해야만 하는 폐쇄된 메커니즘 안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비평의 카르텔은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공신력 있는 등단제도를 통해 비평가를 인증하고 몇 개의 매체가 주요한 지면을 분점하고 있는 상황은 흡사 봉건제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몇몇 영주들이 다스리는, 이 문자와 이론으로 쌓아 올린 성채는 매우 공고한 것이어서 낯선 자를 쉽게 허락하지 않고, 이미 들어간 자들은 문지기가 되거나 성벽을 높이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평은 아직도 두 번째 계절에서 지루하게 정체되어 있다고 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한 절기의 끝에서, 그리고 다음 계절의 발흥하는 지점에서 네트워크로 창출된 새로운 비평의 영토를 목도하고 있다. 동시성과 다중접속,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배포를 통해 거대한 데이터의 순환을 이루는 이 가상의 생태계 안에서는 디지털로 축성된 플랫폼들이 세워지고 무너지기를 반복한다.

 

온라인을 거점으로 하는 디지털 플랫폼들은 대안적 비평모델을 출력하거나 취향의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스스로의 위치를 설정해낸다. ‘집단오찬(jipdanochan.com)’은 신생공간 이후 가시화된 일련의 인식론적 전제들, 예를 들어 스마트 디바이스에 의해 불안정하게 동기화된 시각장과 파편화된 시공간, 그리고 이러한 동시대적 타임라인을 스크롤하는 후험적 주체를 상정하고 있다. 일종의 세대론과 데이터 미학이 연동된 이 비평적 가설은 기존의 담론이 포착하지 못한 새로운 실천들을 일별하면서 폐허로서의 세계관 혹은 납작해진 당대의 풍경에 대한 비평적 의제를 공표한다. 반면, ‘옐로우 펜 클럽(yellowpenclub.com)’은 보다 미시적인 대상에 천착하는 동시에 관객이자 플레이어의 시점으로 외부를 응시하고 있다. 세 명의 멤버로 구성된 이 느슨한 비평동인은 미술계 안팎에서 그들이 경험한 사건들을 매우 주관적인 에세이로 발화하는데, 특정한 경향이나 이론에 기대는 형식적 비평의 반대 항에서 일종의 화용론적 글쓰기를 업로드한다. 무엇보다 비평의 첫 번째 계절을 연상시키는 크리틱-(critic-al.org)’은 대안적인 비평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장을 구현하고 있다. 제한 없는 투고와 생산적인 논쟁을 보존하는 이 개방된 공유지에서 비평은 상품화와 전문가주의에서 벗어나 평등주의(egalitarian)라는 동시대 미학의 핵심과 공명을 이룬다.

 

이 새로운 계절에서 디지털 플랫폼들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오프라인을 침공하고 전통적인 비평 매체들과 패권을 다투는 전쟁터 혹은 독자적인 체계를 세운 고립된 갈라파고스 군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곳은 막이 내리지 않는 서사극이 상연되는 극장이 될 수도 있다. 객석과 무대가 매우 가까운, 사실은 거의 구분되지 않는 이곳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동시대의 반짝이는 것들을 무대에 올리고 때로는 조명을 비추면서 그것에 담긴 무성한 플롯들을 엮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험의 서사로 채워진 방백들이 무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극장에 앉아있노라면 아마도 다중(the multitude)이 주체가 되는 비평의 정치학을, 그 또 다른 계절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