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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오찬 비평 워크샵

현상학적 미술관 - 차가운 콘크리트와의 포옹을 갈구하며 현상학적 미술관- 차가운 콘크리트와의 포옹을 갈구하며 전민지 * 본 원고는 『건축평단』 2017년 여름호에 수록된 원고를 재게재한 것입니다. 1. 어려운 것은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고, 딱딱한 것은 누구에게나 탐탁지 않다. 어려운 동시에 딱딱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2. 그러한 존재를 몇몇 꼽아보자니, 미술관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술관에 첫 발을 디딜 때, 게다가 그곳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할 때 오는 무력감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분명 반갑지 않은 생경함이 아닌가. 공간 속에 무언가 담아내는, 또는 담아내야 하는 건축물의 필수불가결한 특징을 차치하고서라도 둘 이상의 예술 장르가 각자의 길을 잃지 않도록 서로 다른 평행선을 타야하는 미술관의 본질은 당황스러움에 빠진.. 더보기
남화연, 《마음의 흐름》에 대한 단상 : 에세이, 무빙 이미지, 노스텔지아 남화연, 《마음의 흐름》에 대한 단상 : 에세이, 무빙 이미지, 노스텔지아 권시우 〈사물보다 큰〉 설치 전경 남화연의 개인전 《마음의 흐름》은 분명 최승희라는 ‘과거’의 안무가를 중요한 전제로 삼지만, 그녀에게 쉽사리 종속되지는 않는다. 특히나 전시장의 2층에 설치된 영상 작업 〈사물보다 큰〉(2020)에서 최승희의 존재는 묘연하다. 해당 작업은 남화연과 (일본에 상주하고 있는 작가의 친구인) 히로후미가 주고 받는 서간 왕래를 토대로 전개되는데, 정작 서간의 내용에서 최승희를 언급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잠깐 앞선 문장에서의 “언급”이라는 표현에 주목해보자. 즉 최승희와 관련된 ‘이야기’는 작중의 내레이션의 일부일 뿐, 결코 이미지 차원에서 구현되지 않는다. 일종의 파노라마처럼 연결된 4채널.. 더보기
좋은 아이디어를 위한 절반의 마법 좋은 아이디어를 위한 절반의 마법 황재민 전시 《Vera Verto: Why are Digital Kids Painting Again? Because They Think It’s a Good Idea》 포스터 전시 《Vera Verto: Why are Digital Kids Painting Again? Because They Think It’s a Good Idea》(이하 《Vera Verto》)의 제목을 옮기면 “베라 베르토: 어째서 디지털 키즈들은 다시 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로 풀이된다. 부속된 긴 소제목은 비평가 얀 베르워트의 글로부터 인용한 것으로, 원문의 ­­­­제목은 “어째서 개념주의 예술가들은 다시 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가? 왜냐하면.. 더보기
0⥃0, 혹은 투명한 몸과 뒤집힌 세계 0⥃0, 혹은 투명한 몸과 뒤집힌 세계 함윤이 《범퍼! Bump!》 설치 전경 몸들은 부딪칠 때 가장 재미있다. 부딪치는 일은 천천히 사라지는 것, 또한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범퍼! Bump!》(이하 《범퍼》)의 영상들은 서로 만나고 충돌하며 자신의 경로를 찾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전표처럼 놓인 한 쌍의 영상 작품들이 총 다섯 줄, 한가운데로 틈새를 만들면서 천장에 걸려 있다. (가장 마지막의 와 만은 예외적으로 서로에게 보다 가까이 접해 있다.) 입구를 등지고 서면 오른쪽 행이 이소정의 작품들, 왼쪽은 박세영의 작품들이다. 나란히 걸린 한 쌍의 영상들은 서로 간의 느슨한 연계 속에서 함께 설치되었다. 위캔드의 전시 공간은 한 덩어리로, 분리된 영역 없이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열.. 더보기
연금술사로서의 조각가 연금술사로서의 조각가 최하늘 1. 모더니즘을 조금 더디게 수용한 한국 현대미술은 서구의 방식을 나름대로 소화시켜가면서 일군의 뛰어난 작가와 기획자에 의해 꾸역꾸역 발전의 방향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동시대성을 획득한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다소 길을 잃은 모양새로 평가받곤 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중 시장이 무너진 한국 현대미술이 오로지 관 중심의 공적 기금에 의존해 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취약한 구조의 공회전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또한 쉽게 개선될 수 없다는 점 역시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한국 현대미술이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국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