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마돌>과 <업로드 유어 데스티니> : ‘유닛’의 뒤편은 어디에?(2)
<난 마돌>과 <업로드 유어 데스티니> : ‘유닛’의 뒤편은 어디에?(2)
권시우
유닛이란 어떤 주체가 소위 디지털계와 동기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계정이다. 이때의 계정은 한 가지 모델로 국한되지 않고, 사용자 주체의 편의에 따라 혹은 사용자 주체가 접속하고자 하는 영역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김희천이 <바벨>에서 스마트 워치에 저장된 위치 데이터를 매개로 죽은 아버지의 존재를 사후적으로 가늠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유추해낼 수 있는 유닛은 한때 아버지와 인터페이스 상에서 일시적으로 동기화됐던 GPS객체다. 다른 한편 강정석은 <GAME Ⅰ>에서 비디오게임의 플레이어가 게임 내 캐릭터 및 세계를 운용하기 위해 활용하는 주변기기에 대해서 언급하며, 게임 내 캐릭터가 독자적인 존재가 아닌 게임 외부의 플레이어와 불완전하게 매개된 유닛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 외에도 일상 차원에서 우리에게 부속된 무수한 유닛들의 목록을 나열할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중요한 전제는 디지털계에 구획된 어떤 영역에 접근하려하든 사용자는 유닛의 시점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강정석은 그 때문에 플레이어가 가상현실에 대해서 느끼는 “불능감”1)을 호소하고, 김희천은 그러한 불능감을 서울이라는 도시에 투사하며 제 나름의 유닛의 세계, 온갖 데이터 껍데기들이 현실의 파사드를 넘나들며 개인의 실존을 희석시키는 불길한 ‘바벨’을 구현해낸다.
일련의 작업들은 가상과 현실을 중첩하기보다 양자 간의 미세한 간극을 전경화하고 그 속에 처한 사용자의 과도기적인 상태를 주지한다. 강정석과 김희천은 각자의 상황/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유닛의 시점을 선택해 작업의 내러티브를 전개하지만, 설사 그러한 내러티브가 망상에 가깝게 비약할 때조차 차마 불능감이라는 전제를 무화시키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고안해낸 내러티브가 본질적으로 현실을 향해 투영된 디지털의 잔영으로부터 도출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종 주변기기를 비롯해 어떤 디바이스와 호환되든 유닛 자체가 아니라 오로지 유닛과의 접촉면을 통해 디지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바로 그 접촉면을 일종의 외상으로 간직한 채 세계를 가늠한다. 이로써 유닛은 디지털과 동기화하기 위한 애초의 목적, 즉 보편적인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마련된 계정의 지위에서 벗어나, 어떤 사용자 주체의 외상을 극화한 장면의 목격자가 된다. 강정석-김희천 연속체를 고려할 때 중요한 점은, 이들이 고안해낸 대체 세계/서사가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데이터의 수열성, 특정 사용자의 동기화 여부와 무관하게 동시다발적으로 산개한 유닛이 체감하는 속도감을 재연한 결과가 아니라, 단지 그 모든 역학이 사용자 편의적으로 조율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버퍼링에 의해 운용된다는 점이다. 이때의 버퍼링은 현실과의 타협점이자 사용자 주체에게 각인된 외상의 징후이다.
여기까지가 불능감이 전면에 드러난 서사, 이를테면 유닛의 세계관이라면, 우리는 그 안에 속한 채 언제까지나 디지털계의 타자일 수밖에 없는가? 유닛의 세계관은 디지털계에 대한 지엽적인 권한, 그로부터 비롯한 외상을 지닌 사용자 주체가 외상의 요인들을 독자적인 규칙으로 환원해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나름의 자유도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다. 달리 말해 이때 사용자 주체는 자신에게 각인된 외상을 도저히 해소할 수 없으며, <GAME Ⅰ>에서 제시한 비디오게임 연대기에 따르면 특정 세대, 이를테면 80년대 태생의 개인이 스스로를 사용자(플레이어)로서 정체화하는 과정은 주변기기의 프로토타입이 부과한 불능감, 즉 일차적 외상을 주변기기의 발전 경로를 따라 지속적으로 재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가상 세계와의 관계를 조율해나가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타자로서의 감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불능감을 일차적 외상으로 경험한 적 없는, 애초에 정체화의 발단 및 계기가 상이한 사용자 주체의 모델을 상정해야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일단의 사용자들을 재차 세대적으로 분할해 90년대 태생만의 독자적인 인터페이스 서사를 구축할 필요가 있지만, 본 글은 그에 앞서 최근의 몇몇 작업들을 단서 삼아 새로운 사용자 주체 모델에 대한 여지를 가늠해볼 것이다.
김효재의 <난 마돌Nan madol> 시리즈는 폰페이 섬에 위치한 실제 해상 유적지인 난마돌에 착안해 제작한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인데, 작업 내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이미지들은 작가가 직접 제작한 이미지가 아니라 구글, 셔터스톡 등에서 발췌한 일련의 푸티지로 구성돼있다. 본 작업은 자연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차용해 난마돌을 나름의 방식으로 탐사하되, 지금 상연되고 있는 모든 것들, 심지어 난마돌이라는 대상마저 작가의 자의에 의해 재편집된 허구에 불과함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난 마돌 : 상 ( Nan madol : Season 1, 2017)>2)은 실제 난마돌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 그것이 현존하는 해상 유적지이자 유물들의 군집이며 현지 언어로 ‘사이의 공간’을 의미한다는 사실로 서두를 떼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실제 난마돌과 무관하게) 저작권이 만료된 채 웹상에 데이터베이스화된 이미지들을 과거 시제에 속하는 유물로 호명하고 그것이 현재에 휩쓸린 양상 자체를 난마돌로 유비하고 있을 뿐이다. 난마돌은 정확히 무엇인가? 앞선 질문은 무용한데, 애초에 탐사라는 행위는 난마돌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작권이 만료된 이미지로 표상되는 과거, 그것을 우연찮게 발견한 사용자가 속해있는 현재, 데이터베이스화된 과거를 무한히 연장함으로써만 가늠할 수 있는 미래라는 가상의 타임라인에 서사적 얼개를 부여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어떤 세계관인데, 이는 <난 마돌 : 하 ( Nan madol : Season 2, 2018)>에서 작가가 확보하고 있는 두서없는 이미지 아카이브, 즉 일종의 유물들이 모니터 상에서 중첩되고 재배열되는 양상으로 재현될 뿐 서사 차원에서 더 이상 심화되지 않는다. 하편은 작업 내에서 유튜브 리액션 영상의 클립을 사용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 단지 상편에서 제시된 난마돌에 대한 동일한 서사를 유튜브라는 미디어 플랫폼의 적극적인 사용자의 관점에서 소화/반응해본 결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설사 하편의 내레이션이 상편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더라도, 최소한의 얼개만을 유지한 채 이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일련의 이미지들을 운용하는 것만으로 어떤 서사가 전개되고 있는 듯한 착시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결국 상/하로 구성된 <난 마돌> 시리즈는 실상 공회전하는 ‘과거-현재-미래’로 요약할 수 있는 빈약한 텍스트를 유튜브 타임라인의 맥락 속에서 증폭시켜 유통 가능한 영상 클립들로 환원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방증하듯 ‘<난 마돌> 상/하 리뷰 영상’3)은 유튜브 리뷰 영상 형식을 빌어 이전 작업들의 개요를 요약하는 척하면서 외려 그에 대한 사족들을 덧붙여나가는 식으로 서사의 공백을 부풀린다. 이처럼 일련의 클립들은 추상적인 문장들로 언급될 뿐 명료하게 실체화할 수 없는 어떤 세계관의 서사적 파편들로 기능함으로써, 선형적으로 이어붙일 수 없는 유튜브 타임라인, 파편적으로 산개한 무수한 클립들의 형태로 백업된 시간/서사를 암시한다.
<난 마돌> 시리즈를 견인하는 유물이라는 존재는 웹상에 누적된 일단의 데이터 이미지일 뿐, 그것은 현실상에서 흐르는 시간과 무관하게 방부 처리된 채 사용자/화자의 의도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라고 명명된 시간의 하위 폴더들 중 어디로든 분류될 수 있다. 앞선 유튜브 타임라인이 무수한 클립들로 포화된, 전체를 맵핑할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잡다한 시간들이 웅성거리는 특정한 플랫폼 형식에서 비롯한다면, 유물들은 사용자가 발췌하고 분류할 수 있는 시간의 단락들로서 플랫폼 내의 포화 상태를 각각의 난마돌들로 군집시키고 정렬한다. 달리 말해 <난 마돌> 시리즈는 유튜브 타임라인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 감각을 증언하면서도, 얼마든지 주어진 플랫폼 내외를 넘나들며 각종 데이터 이미지를 유물로, 유물들의 군집으로, 시간이라는 상위 폴더로 범주화해 사용자의 권한 내에 종속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유튜브 클립의 관성에 따라 제작한 일련의 작업들은 외려 해당 플랫폼의 경제로부터 일정한 거리감을 둔 채, 즉 그 안에서의 유통 가능성을 배제한 채로 독자적인 클립들로 환원된다. 그리고 김효재는 마침내 소쇼룸에서의 스크리닝이나 <호버링Hovering>과 같은 전시에서 <난 마돌> 시리즈를 슬라이드 폰이나 CRT모니터와 같은 구형의 디바이스 상에 저장해 상연함으로써, 이번에는 디지털계에 접속해있는 상태에서 빠져나와 물리적인 차원에서의 유물을 생산해낸다.
<호버링Hovering> 전시 전경
<난 마돌> 시리즈에서의 유닛의 시점은 유튜브 타임라임의 혼란상에서 시작해 그 외의 디지털 플랫폼들을 경유한 뒤 종내 모니터/스크린 외부의 현실에 다다름으로써 무력화된다. 그 대신 사용자는 앞선 과정을 별다른 불능감 없이 소화하며(유닛의 존재를 미처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재빠른 속도로 각종 인터페이스 사이를 넘나들며, 혹은 개개의 유닛들에 몰입하지 않은 채 다양한 링크로 매개된 유닛들의 경로를 선택적으로 가로지르며) 서로 다른 형태의 유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랜더링한다. 애초에 유닛은 현실의 관점에서 대상화되지 않은 채 유튜브 타임라인 내에서 사용자와 충분히 동기화돼있고, 불능감은 작업의 발단이 아니라 역으로 사용자가 체화하고 있는 디지털계의 속도감을 점차 지연시킨 결과로서 최종적으로 관객들에게 가시화된다. 이를테면 <호버링Hovering>에서 <난 마돌 : 하>는 작업 외부에서 울려 퍼지는 서민우의 사운드 작업과 혼선된 채 의도적으로 몰입을 방해하며 물리적인 차원의 유물로서 동결된 클립들의 상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때 연출된 불능감은 주어진 클립들을 <난 마돌>의 세계관에 따라 얼마든지 현실상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유물로서 사용자/작가에게 귀속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 사용자 주체에게 각인된 외상의 반영과는 거리가 멀다. 달리 말해 접속이 불가능한 유물의 상태는 사용자와 디지털계 간의 접촉이 불량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용자/작가가 구형의 디바이스와 같은 올드 미디어, 즉 ‘근과거’라는 폴더에 일련의 클립들을 일시적으로 분류해둔 결과에 가깝다.
이처럼 김효재가 유튜브 타임라인과 현실 간의 낙차를 발생시켜 전자에 속한 클립 형태의 서사적 파편들을 후자를 향해 투사한다면, 업체eobchae의 개인전 <업로드 유어 데스티니>는 유튜브 타임라인에서 발췌한 형식/내용을 토대로 가설한 어떤 세계-공간에 안주하며 현실을 향한 모든 벡터들에 훼방을 놓거나 가상의 영역으로 우회시킨다. 업체는 작중에서 디지털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아마추어 뮤지션, 포스트 프로듀서인 프레카리-아티스트라는 직업군을 상정한 뒤, 그에 속하는 인물들을 자의로 선별해 최종 1인에게 토크쇼 참여나 뮤직비디오 제작과 같은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업로드 유어 데스티니>4)는 본 프로그램에서 최종 선택된 이괴롬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이괴롬은 서바이벌의 수순을 거쳐 살아남자마자 외려 현실에서 자연발화돼 죽어버리고 실제로 작중에 등장하는 것은 이괴롬의 데이터를 토대로 형상화한 ‘고(故)이괴롬’이라는 아바타다. 프레카리-아티스트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는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이괴롬은 업체가 유튜브 타임라인, 무엇보다 그 안에 업로드된 다수의 클립들이 형성하는 소위 K-스러운 정서를 미감의 기준으로 삼는 독자적인 컨텐츠들을 구현 제시하기 위해 철저히 도구화된다. 이를테면 이괴롬의 죽음은 최종 선택의 순간과 동시에 어떠한 인과 관계도 없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단지 자아를 데이터 차원에서 백업시키기 위한, 즉 컨텐츠의 재료로 삼기 위한 의도적인 살해에 가깝다.
문제는 그러한 폭력적인 착취-피착취의 관계가 업체에 속한 실제 인물들 간에 이루어지는 일종의 역할극에서 비롯한다는 점이다. 고인이 되기 이전의 이괴롬을 연기하는 인물은 제3자가 아니라 업체의 일원인데, 이로써 착취의 대상은 모호해지고 실제 등장 여부와 무관하게 본 작업에 연루된 모든 인물들이 일군의 프레카리-아티스트로 환원된다. 달리 말해 본 작업의 내러티브는 특정한 프레카리-아티스트, 즉 업체가 대중/관객에게 가시화되기 위한 방편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빙자한 가상의 위계적인 플랫폼을 고안한 뒤 그 안에서 다름 아닌 스스로를 착취한 결과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고 이괴롬은 업체의 자기 살해를 통해 구현된 아바타인 셈이며, 전시장 한편에 VR로 구현된 부산스런 분향소 또한 단순히 피착취자의 죽음을 냉소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업체의 자기 애도를 위해 가설한 또 하나의 무대로 귀결된다. 이처럼 착취-피착취의 행위가 맞물린 자가 생산 구조를 전제한 상태에서 <업로드 유어 데스티니>를 독해하면, 본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K-스러움은 오로지 디지털계만을 작업의 근거로 삼는 사용자/작가가 자신이 속해있는 유튜브 타임라인 내에서 번성하고 있는 한국발 스레드의 사용자들을 겨냥해 그 안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차용하고 과장한 틈새 공략의 결과로 귀결된다. 달리 말해 K-스러운 컨텐츠에 대한 과몰입 상태는 특정 개인에게 체화된 저질 미디어 정서의 발현이기 이전에, 국내의 웹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자기 애도의 과정마저 무대화시키는 프로세스를 추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효과적인 유통인 것이다.
업체eobchae / 보너스 리워드: (故)괴롬을추모 / VR 설치 / 가변크기 / 2017
우리는 여전히 유튜브 플랫폼 전체를 섣불리 맵핑할 수 없되, 그 속에서 업체와 같은 프레카리-아티스트가 속한 지정학적인 위치를 가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때의 위치는 모든 사용자가 수용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조건이 아니라, 업체가 유튜브 플랫폼에 대한 간략한 시장조사 끝에 선택한 특정한 소비층의 네트워크다. 디지털계의 특정 구간을 취사선택하고 이를 토대로 어떤 세계관을 망상해낸다는 점에서 <업로드 유어 데스티니>는 일정 부분 유닛의 시점에 기반하고 있다. 이를테면 온갖 인터넷 밈, 짤방 등을 동원해 제작한 고 이괴롬의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일련의 컨텐츠들은 특정한 소비층과 매개된 유닛들과 동질화한 업체의 유닛이 체감하는 유튜브 타임라인을 상연한다. 주지하듯 이때 연출된 K-스러운 풍경은 실제 현실의 잔상들을 기워낸 조각보가 아니라, 이미 디지털에 의해 여과된 K-서사의 파편들, 특정한 생산자/소비자들이 방출한 일종의 데이터 폐기물들을 리믹스한 결과다. 다른 한편 업체는 본 전시에서 현실에서의 스트리밍을 명목으로 이괴롬이 제작했다고 상정한(실제로는 업체가 자신들의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해 연성한 재료들인) 밈-음악, 일종의 데이터 폐기물들을 CD-ROM에 저장해 굿즈 형태로 무료 배포했는데, 이는 실제 유통처, 즉 디지털계에 속한 작업의 판촉 이외의 목적으로 현실의 재료를 취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낸다.5) 비록 업체는 앞선 착취-피착취의 자가 생산 구조를 국내의 웹 생태계의 관성에 휩쓸려 수동적으로 선택했지만, 그에 앞서 디지털계는 이들에게 디폴트의 환경이고 그 안에서의 폐쇄적인 생산라인에 자족하고 있다.
김효재와 업체의 작업을 대질했을 때 괄목할만한 점은 이들에게 유닛이란 단지 사용자 주체에게 부속된, 얼마든지 편의에 따라 탈착 가능한 다수의 시점, 말 그대로의 계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때의 사용자 주체는 특정한 유닛-시점을 일시적으로 운용할 뿐, 그 안에서의 몰입감을 미처 해소하지 못한 채 여타의 유닛들이나 현실에서의 경험으로까지 연장하면서 굳이 어떤 착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설사 단일 스크린 상에 다수의 유닛-시점들이 중첩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것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사용자의 권한, 혹은 사용자가 다시점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는 전제 자체는 고스란히 유지된다. 이를테면 업체의 <업로드 유어 데스티니>나 김효재의 <난 마돌 : 하>에서 제시된 서로 다른 혼란상은 얼핏 유튜브 타임라인에 압도당한 사용자/유닛이 오작동하는 풍경처럼 보이지만, 전자는 작업 유통의 효율성 및 업체라는 브랜드 홍보를 위해 유튜브 타임라인의 특정 구간을 프로듀스한 결과일 뿐이고, 후자는 난마돌의 재료들을 캐내기 위해 데이터베이스의 면면을 가로지른 궤적의 기록일 뿐이다. 그러므로 유닛은 여전히 사용자와 동기화하되, 그 과정에는 더 이상 불능감이라는 외상이 개입할 만한 여지가 없다. 일련의 작업들에서 분란하게 움직이는 데이터 이미지들, 그로 인해 가중되는 속도감은 현실과 가상의 간극에서 교환되는 잔여 전류들이 합선된 결과가 아니라, 오로지 가상에 임포트된 데이터 재료들이 사용자의 레이아웃 내에서 재배열/재편집되는 과정을 암시할 뿐이다. 이들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유닛의 시점을 빌어 불능감의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유닛과 일시적으로 접촉한 순간들을 어떤 식으로든 중첩하거나 클립의 형태로 나열해 동류의 사용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유닛들의 조작감, 즉 사용자 경험 자체다.
1) 강정석, <특별공략, GAME Ⅰ 완전분석 매뉴얼>, 전시 텍스트 수록
2)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7RGpdODcPPKUehoQEW2TuZjtIR9aD0pH
3) https://www.youtube.com/watch?v=Rl2BufCB1Do
4) https://www.youtube.com/watch?v=jurwh4Z1fe8&feature=youtu.be
5) 업체는 전시 현장에서 무료 배포한 '(故)이괴롬'의 음반에 수록된 일련의 트랙들을 별도의 웹 사이트에 공개했다. 음원은 다음의 링크를 통해 청취할 수 있다. (leegwer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