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그리기 : 서지현 인터뷰]
# 2015년 3월 31일
물어본다 황재민 (이하 황) : 졸업작품 이야기 먼저 해보자. 사실 처음에 작품을 보고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회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고, 왜 회화를 하는지에 대한 전제 조건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느꼈고... 아니 졸업작품 설명을 먼저 해야하나?
답한다 서지현 (이하 서) : (웃음)
황 : 그때 졸업 전시를 계원예대 정보관에서 했던 걸로 아는데, 정보관 건물을 님이 베껴 그렸다. 그리고 오브제처럼 배치시키고... 일단 제목이 <좌절하는 오브제>이기도 했고.
<좌절하는 오브제> 2013년, 계원예술대학교 정보관 건물 7층에서 8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배치
서 : 그랬지.
황 : 나는 그걸 회화를 오브제화化 시킨다기 보다는... 공간을 베껴 그린다는 것? 거기서 이 분이 뭘 얻었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생각으로는 약간 장소 특정적 뭐 이런 생각도 하긴 했는데 그거랑은 좀 달랐고.
서 : 근데 사실 전시 공간이 학교 옥상이었고. 뭔가 ‘전시’를 하는 화이트 큐브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좀 섞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도 사실은 그걸 베끼는 데엔 별 이유가 없고 그냥 거기다 전시를 하니까 건물을 베낀 거였는데... 근데 나중에 해놓고 보니까 정말 장소 특정적인 것처럼 보이게 되어버린 거지.
황 : 근데 뭐 장소 특정성이라는 맥락이랑은 좀 차이가 있긴 하다.
서 : 전혀 그런 건 아니었다.
황 : 오히려 현상학적 장소 특정성이라는 미니멀리즘의 전제를 좀비적으로 활용한? 게다가 그걸 진짜로... 손으로 그렸으니까. 그게 약간 의아한 부분이다. 일단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은... 어쨌든 지금 회화는 전부 오브제다. 2D는 3D가 됐는데, (작업이) 다소 초보적이긴 하지만 그걸 효과적으로 반영하긴 했었던 것 같다. 공간을 그려서 튀어나오게 한 다음 오브제로 삼았으니까. 그 과정에서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장소성이라는 맥락을 참조하기도 했었고.
서 : 그리고 실제 오브제를 가져다 놓기도 했었고.
황 : 아 거기 오브제도 있었나?
서 : 그랬다.
황 : 오브제에도 물감 칠하고 했었던 것 아닌가?
서 : 그렇다.
황 : 아무튼 회화라는 맥락은 작업에서 중요하게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일단 손으로 그렸다는 게 있었고.
서 : 회화라는 맥락을 강조하기 위해서 물감으로 칠했던 거였다.
황 : 처음에 다니엘 뷔랭의 작업실에 관한 글을 인용하기도 했었다.
서 : 참고를 했었다. 그런데 사실 그 텍스트는...
황 : 일종의 알리바이였나?
서 : 아니 알리바이는 아닌데... 작업이 작업이 되는 공간? 이라는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에 거기서 참고를 많이 했다. 왜냐하면... 글에서 ‘작업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게 작업’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회화라는 것은 항상 작업실에서 제작이 되고, 어딘가에 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회화가 오브제가 되면서, 이제 그런 절차는 상관이 없고, 그렇다면 전시 공간에서 만들어져도... 그건 뭐랄까, ‘작업’이 될 수 있게 되었다.
황 : 아무튼 이제 회화는 뭔가를 담고 있는 스크린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오브제라는 생각은 전제가 되어있었던 것 같다.
서 : 그랬던 것 같다.
황 : 나는 그때는 그 변환을 못 읽고 있었다.
서 : 그때 나도 확신은 없었다.
황 : 처음 작업을 했을 때는 그걸 왜 그렸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안다. 그걸 그릴 필요가 있는지, 사진으로 찍어서 오브제로 삼아야하는 게 아닌지?
서 : 그런 질문 많이 받았다.
황 :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었나?
서 : 그런 질문을 한 사람들은 사실 회화를 이미지의 범주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다. 근데 그때 나는 회화가 이미지라는 생각보다는, 좀 더 회화에 관한 것을 하고 싶어서 작업을 그렇게 했던 것 같은데... 단순히 ‘회화가 오브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회화로 작업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었다. 사진으로 찍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는.
황 : 그렇다면 그리는 것은 이전에 행해졌던 그리기라는 행위와는 조금 다른, 그러니까 회화를 인용하기 위한 행위로서의 그리기였나?
서 : 그렇다. 그리고 실제로 전시 장소에서 작업을 만드는 것도 있었고, 전시 장소를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작업이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찍는 건 아무튼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황 :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좀비스러웠던 것 같다.
서 : 그런가? 모르겠다.
황 : 다른 이야기인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리기라는 행위가 약간... 뭐 진정성? 이런 느낌? 왜냐하면 제목도 좌절하는 오브제였으니까. 오브제가 된 걸 좌절하는 회화였잖나. 그래서 그리기에 대한 회한이라고 그래야되나? 회한이라기보다는... 그리기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같은 게 들여다보이기도 했다. 그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서 : 그런데 나는 전혀 그런 입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니게 된 회화라는 것이 좌절하는 상황... 이었다.
황 : 그럼 좌절이라는 게 딱히 가치판단이 들어간 단어는 아니었나 보다.
서 : 그렇다. 사실 나도 그 작업을 하면서 혼란스러웠고. 그래서 ‘좌절하는’ 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 같지.
황 : 그럼 이야기를 돌려보면. 그때 회화 작업을 한 게 처음인 것으로 안다. 2년 동안 학교 생활을 하면서?
서 : 페인팅을 한 건 처음이었지.
황 : 그럼 그 계기 같은 게 있었나?
서 : 그 전에는 드로잉을 주로 했었는데, 드로잉을 할 때는 소주제로 (작업을) 이끌어 나갔었다.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매체적인 고민을 해야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 드로잉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말하면 정말 ‘그림’이잖나. 종이 한 장이고. 그래서 어떤 매체적인 고민을 하는 작업을 하고, 그리고 그런 형태를 띄려면 어쨌든 캔버스에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드로잉은 드로잉이라고 생각하고, 그림은 캔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잖나. 여기서 말하는 그림은 또 2차원적인 평면이 아니라... 음, 캔버스.
황 : 캔버스 자체?
서 : 응. 오브제.
황 : 오브제에 가까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서 :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전제가 아니었나 싶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황 : 그러면... 회화를 3D 오브제로 취급하는, 그런 작업적 경향 중에 참고했던 게 있었나?
서 : 그때 참고했던 분은... 김민애 작가. 조각하시는 분이긴 한데, 형태적으로 많이 참고를 했었다. 그리고 제니조 작가도 참고를 했었고. 근데 뭐가 계기가 됐다거나, 이런 건 없었다.
황 : 그럼 아까 이야기했던, 회화를 구성하는 방법으로서의 그리기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사실 회화를 그려서 회화적인 맥락을 차용한 다음에 오브제로 제시하긴 했지만, 그림 자체만 놓고 보면 거의 회화적 회화에 가까운 붓터치를 보였었다.
서 : 붓터치를?
황 : 붓터치는 아닌가? 아무튼. 그걸 그려서 구성하는 방법은 회화적 회화에 좀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건 왜였나?
서 : 그건 사실 좀 웃긴데, 내가 유화를 해본 적도 없고... 붓질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작업에) 아크릴을 사용하기도 했었고.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붓질을 한다한들 그게 회화적 회화가 될 리가 없지, 라는 생각을 전제로 한 것도 있다. 그리고 졸업 전시 공간 자체가 옥상이었다. 그런데 회화는 나중에 어디에 전시가 되려면 옮겨다녀야 되지 않나. 근데 그게 만약에 나중에 다른 장소에 갔을 땐 어차피 회화처럼 취급될 거란 말이지. 그래서 그런 식으로 그려야만 했었다.
황 : 그런 점을 보면 작업이 되게 공허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공허함을 그때는 눈치채고 있었나?
서 : 오히려 그런 고민에서 작업이 나왔던 것 같다. 그때는 회화가 작업실에서 만들어져서, 나한테 작업실은 그 전시 공간이었지만. 아무튼 만들어져서 나중에 전시가 될 것까지 전제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브제도 따로 목재로 만들었던 거고.
황 : 그럼 어쨌든 미술가로써 마주하는 현실적인 한계? 그런 것을 그림에 투사하려는 노력이 있었던 거였네.
서 : 그렇지. 오히려 그림에는 투사를 안 했다. 전시되는 형태라든지, 그런 부분에 투사를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소와 캔버스에 무엇이 그려져 있느냐는 서로 상관이 없었다.
황 : 그림은 지금 보관을 하고 있나?
서 : 집에 보관을 하고 있다.
황 : 딱히 작업실은 없나?
서: 없다. 그래서 웃기지. 옛날에는 작업실 글 가지고 고민을 할 때, 작업실도 없고 집에서 작업을 해야하니까. 집안 같은 걸 그리려고 했던 적도 있다. 근데 그건 너무 웃겨질 것 같아서 관뒀다.
황 : 그럼 공간을 덧그려서, 어떤 공허한 미디엄으로서 회화-오브제를 만들어냈는데. 그걸 다른 곳에 걸면 그 맥락과 달라지지 않나. 오브제가 아니라 회화가 되는데, 그런 낙차 같은 것은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건가, 아니면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서 : 내버려두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그린 공간이라는 것도 사실 공간감이 없지 않나. 그림 자체만 보면 공간감이 전혀 없는 평면으로 그렸기 때문에, 그게 전시가 되었을 때는 더 오브제로서 작용을 한다고 생각을 했었던 거고. 작업이 그 장소에 있지 않고, 벽에 걸려있다든지 바닥에 놓여있다든지 했을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어 이건 벽이네, 바닥이네’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떤 추상적인 패턴이라든지, ‘뭔가 평면을 구성했네?’ 라고 생각하길 바랐던 거다.
황 : 그런 점에서는 구세대적인 회화와 연결고리가 아직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오브제가 되고, 좀 더 그리기와 멀어지는 작업을 해볼 생각은 없나?
서 : 사실 나는 그렇게 나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밖으로 튀어나가고 그런 걸 떠나서, 그 안에서 미묘한 조절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뭐라고 해야 하지? 모르겠다.
황 : 그럼 요새 북미에서 유행하는 추상 회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서 : 그걸 보면서 저기까진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거지. 내 바운더리를 정한달까. 근데 사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황 : 필요하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서 : 어쩔 수 없기도 하고. 나한테 필요하지.
황 : 어떤 방식으로?
서 : 그러니까 뭔가 회화의 범위? 조건? 이런 것을 주제로 삼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써.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그게 지표의 일부가 되니까. 거기로부터 어떻게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거기로부터 얼마나 더 멀리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되게 중요하지. 사실 나는 어떤, ‘아 회화는 이제 이미지가 아니라 오브제구나’ 라는 걸 자각한 이후부터는 그렇게 멀리 나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
황 : 뭘 하든 어쨌든 오브제니까?
서 : 그렇지. 근데 뭐, 그 사람들이 굉장히 빨리 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고. 내가 거기에 뛰어들기에는 조금.
황 : 그럼 좀 더 적극적으로 오브제가 되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페인팅을 해봤자 오브제가 된다면, 그럼 결국 2등 오브제를 만드는 것 아닌가.
서 : 그런가?
황 :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약간... 당신이 아직은 지금 지나가버린 회화와 연결되는 지점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서 : 그런 것도 있는데, 그렇다고 내가 뭔가, ‘회화는 어찌되었든 이미지야’를 추구하는 건 아니고... 그게 웃기다는 거지. 여지껏 사람들은 회화를 이미지로 봐왔는데... 그러니까, 뭔가... 모르겠다. 아직은 약간 왔다 갔다 하고 싶은 것 같다. 어쨌든 회화가 되기 위한 조건은 아직 많이 남아있잖나. 뭘 그리느냐부터 시작해서. 그걸 하나하나 조절을 하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 있는 것 같다.
황 : 지금은 뭘 주장해도 말이 되는 시기니까. 괜찮을 것 같다. 다만 그렇게까지 회화의 오브제화를 거부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은... 약간 자괴적인 것 같긴 하다. 어떤 면에서는. 이미지에 그렇게 큰 미련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오브제화한 회화에서 거리를 둔다는 것은, 어쨌든 이미지를 지향한다는 걸로 밖에 들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 :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사실은... 그걸 오브제라고 생각을 한다면, 나는 캔버스 작업을 하지 않을 것 같다.
황 : 아예 오브제 작업으로?
서 : 그렇다. 근데...
황 : 헌데 지금의 3D는 또 2D지 않나. 아무리 공간감이 있고 밀도가 있고 거리감이 있어도, 그걸 납작하게 인식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서 : 그렇다. 이것도 보면 약간 도피적인 측면이 있는데, 내가 3D 작업을 해봤자 2D고 2D 작업을 해봤자 3D라면, 차라리 캔버스라는 굉장히 편리한 도구가 남아 있는데. 그걸 내가 왜 버려야 하지? 이런 생각도 하고.
황 : 하지만 나는 캔버스를 활용하는 방법이 그리기 밖에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근데 당신은 그리기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나.
서 : 그건 아직 모른다. 버릴 때가 되면 버리겠지. 근데 그리기로 좀 더 해보고 싶은 것들이 약간은 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해상도라든지. 도판으로서의 이미지라든지. 그런 것들이 있었다. 또 내가 회화적 회화를 하지 못함? 안 함? 으로써 생기는 평면적인 느낌에 대해서도 다뤄보고싶고.
황 : 그런가.
서 : 그리고... 글쎄. 나는 굳이 오브제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정말 오브제를 함께 사용할지언정, 캔버스의 틀을 바꾸거나, 그런 건 잘 하지 않을 것 같다.
황 : 어째서? 이유를 알고 싶다.
서 : 그건 그냥 2차원 평면으로 돌아가는 일인 것 같다. 그건 뭐랄까, 나는 지금 줄타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지금으로써는.
# 2015년 4월 9일
황 :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가 줄타기 이야기였나?
서 : 아마도.
황 : 그럼 줄을 타는 게 너무 안전한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않나? 그래서 오히려 좀 더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
서 : 그렇다. 그런데 줄타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뭐가 안 보이니까.
황 : 어쨌든 그럼 한시적인 전략인 건가?
서 : 일단 그걸 잡고 살아남아야겠지.
황 : 그럼 줄타기를 하기 위해서 뭔가 고려하고 있는 부분은 있나?
서 : 음... 뭐라 그래야 하지? 그림체? 그림체는 아닌 것 같고. 해상도? 내 적절한 해상도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은 있다.
황 : 약간 추상적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해주면?
서 : 너무 잘 그려서도 안 되고 너무 못 그려서도 안 되는 방법론이라고 생각해서. 그 적정선을 지켜야겠다는 것이다.
황 :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얘기였던 건가?
서 : 내가 말하는 잘 그리는 건 아마 회화적인 터치를 말하는 것 같다.
황 : 아. 정말 페인터럴리하게 그리는 것?
서 : 사실 내가 그걸 잘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못 그린 페인터럴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그림체가 될 때도 있다. 그리다 보면. 그걸 조절을 할 줄 알아야겠지.
황 : 그럼 레퍼런스 이야기도 좀 더 해보고 싶은데, 당신이 전에 말했던 건 김민애 작가와 제니조 작가였다. 근데 생각해보면 둘은 좀 종합하기 어려운 작가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김민애 작가는 조각으로서의 조각을 하는 조각가고, 제니조 작가는 페인터럴리 페인팅으로... 정말 회화를 하는 작가다. 그 둘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던 건지 설명해줬으면 한다.
서 : 방법적 측면에서 세부적인 영향을 받은 건 사실 없다. 그냥 뭔가 매체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확신을 가진 건 그 두 작가 때문이긴 하다. 이렇게 하면 재미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황 : 그러면 그 이전까지는 매체적이지 않은 접근을 고려하고 있었던 건가?
서 : 고려한다기보다는 그냥 거기에 미련이 있었다.
황 : 매체적이지 않은 접근에 대해서?
서 : 그림을 그려야겠다, 뭐 그런 거였지.
황 :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건 오히려 매체적인 접근 아닌가?
서 : 내가 말하는 건... 두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무엇을 그릴 것인가와 회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있다고 한다면, 후자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두 작가를 보고 확신이 들었던 거다. 그 전에는 다음에는 뭘 그리지?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지? 그런 데에 미련이 많이 남아있었다. ‘잘 그리고 싶다...!’ 약간 이런.
황 : 아.
서 : 그렇지만 제니조는 글쎄, 페인터럴리라고는 하지만 나는 뭔가... 그렇게 느껴지진 않았었다.
황 : 제니조가 데이빗 호크니의 방법론을 차용한 부분이 있지 않나. 그럼 그 부분을 중심으로 작가를 파악하고 있는 건가?
서 : 아마 그런 것 같다.
황 : 그럼 차용이라는 방법론에서도 영향을 좀 받았나? 물론 지금은 뭘 하든 차용이지만. 어쨌든.
서 : (웃음) 글쎄. 차용이라는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진 않은데... 모르겠다.
황 : 이런 방법도 있구나, 뭐 이런 정도였나?
서 : 그렇다. 음... 캔버스라는 매체를 사용하면서, 시각성이라는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않나. 사실 나는 그런 노골적인 부분을 해도 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보니까 재미있었다.
황 : 그럼 김민애 작가 이야기도 해줄 수 있을까? 어느 작업이 인상 깊었나?
서 : 김민애 씨 작업은 <좌절하는 오브제>를 시작하고나서 형태적으로 참고를 많이 했었다.
황 : 그럼 그 이전의 사례들에서 영향을 받은 바는 없었나? 한국의 회화적 실천이라면 뭐 단색화 같은 경우도 있었고. 그런 한국의 추상들에 대해선 영향을 받은 게 없는 건가?
서 : 없다.
황 :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작년 전시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졸업 작품 이후로 첫 작업이었고, 마지막으로 전시했던 작업이었다. 그 이야기 좀 해줄 수 있나? 어쩌다가 그런 걸 만들게 되었는지. 나는 처음에 보고 좀 당황스러웠다.
<11쪽, 2 조토(전칭), <옥좌에 앉은 성모 마리아>> 2014년
서 : 왜?
황 : 그 전에는 적극적으로 오브제를 만드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나. 나는 그걸 좀 밀고 나갈 줄 알았다. 근데 갑자기 주제를 정말 그림으로 바꿔놓았다.
서 : 나도 약간 비약했다는 느낌은 없지 않아 있는데, 졸업 작품을 했을 때 이제 내 생각에는 ‘회화가 오브제가 되어버린 것 같아’ 라는 선언을 했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 상태에서 두가지 갈림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번에 이야기했듯이 정말 (회화를) 오브제로 다루는, 그 쪽으로 가느냐 아니면 그건 인정하고 회화 쪽으로 가느냐, 두가지였는데 나는 그냥 후자가 궁금했다. 어떻게 나올 것인가. 왜냐하면 이미 전자는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이대로 작업을 한다면. 그리고 너무 가벼워진다고나 할까? 그런 걱정도 있었다. 그때도 전시 장소에, 전시 장소를 참고해서 그림을 그린 거고... 이렇게 된다면 앞으로도 똑같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황 : 그럼 연작으로 이어나가겠다는 욕심은 없었던 건가?
서 : 그 필요를 잘 못 느꼈다.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있었다면, 다른 화이트 큐브에서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공간에 어울리게 뭔가를 만들고 하는 건 한번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황 : 그럼 (두번째 작업에선) 아무튼 그림을 그리는 걸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건가?
서 : 아니 그런 건 아니다. 그렇다기보단, 앞으로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리든 그건 오브제가 되는 거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상태였는데, 그렇다면 뭘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다음 얘기로 넘어갈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계속 있었다. 물론 다음 얘기가 뭔지 나도 몰랐지만.
황 : 처음에 그림을 봤을땐 되게 의외였다. 일단 캔버스 크기가 평소에 님이 다루던 것보다 훨씬 컸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토를 따라 그렸다. 조토를 그린 게 있었고, 마크 로스코 풍의 추상이 하나 있었고, 그 가운데에 당신이 캔버스 자체를 팔레트 삼아서 사용한 것이 있었다. 막 한 쪽에는 조토로 상징되는 미술사가 있고, 한 쪽에는 마크 로스코로 상징되는 미술사가 있는데, 둘 다 굉장히 종교적이지 않나. 이런 엄숙함과 숭고함 사이에 본인이 샥 들어가있는... 그런 뭔가... 아 이건 뭐지? 막 이 사람이 사실은 에고가 엄청 큰 사람인가? 뭐 이런 생각도 들고. 엄청난 에고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서의 그림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랬다. 게다가 그 조토 그림은, 조토처럼 그려놓은 게 아니었다. 일단 아크릴로 그렸고. 되게 납작하고 평평하고. 얼굴 부분을 들여다보면, 전에도 말한 적 있는 거지만, <에케 호모>를 복원하려다가 이상한 것으로 만들어 놓은 할머니처럼.
서 : 맞다. 되게 웃기지.
황 : 이 사람이 역사 자체를 짤방으로 파악하려는 건가? 그런 생각도 있었고. 로스코 그림도 되게 납작하고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었고. 게다가 팔레트 사용한 것도 보면은... 뭐 그림 그리는 다른 친구 말로는 되게 이상하게 사용한 거라고 했었다.
서 : 그거 전시할 거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었지.
황 : 아무튼 그걸 정말 그림처럼 꾸며놓은 게 아니라 팔레트로 사용한 게 느껴지는 모양을 하고 있었고.
서 : 그게 왜 나왔었지? 근데 나는 항상 머릿속에는 미술사라는 레퍼런스가 있었다. 뭐 미대생들 거의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 해도? 그런데 그 미술사라는 게 우리는 체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항상 도판으로 보고. 실제로 가서 봤다고 해도 그건 굉장히 단편적인 부분일 테고.
황 : 그럼 역사라는 주제를 그림으로 드러낸 건 어느 정도 무의식적인 차원에서였나? ‘그림을 그리려면 이게 당연히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서 : 나도 내 메커니즘을 잘 모르겠는 게, 그냥 첫번째 작업의 다음엔 뭐가 와야 될까, 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잘 안 풀리니까 미술사를 그냥 보게 된 거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뭔가... 어쨌든 작업을 새로 하려면, 특히 그림을 그리려면 어쨌든 미술사는 레퍼런스로 자동적으로 작용을 하게 되는 건데. 그렇다면 이걸 해볼까? 이런 느낌이 있었던 거지. 어쨌든 내 그림도 오브제고, 레퍼런스도 내가 한번도 체감하지 못한, 카드 같은 것 아닌가. 머릿속에서 한 장씩 뽑아서 쓰는? 그럴 거라면 그냥 레퍼런스를 레퍼런스로 써보자, 하는 게 있었던 것 같다. 뭐 막 나가는 거긴 한데, 사실 조토도 회화사 책의 맨 처음에 있어서 사용한 것도 있었고.
황 : 미술사를 상징하는 기호로서?
서 : 그렇다. 나는 세 가지가 같이 있으면 웃길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어떻게 이야길 해야 하지? 생각이 정리가 안 된다.
황 : 그럼 이야기를 좀 돌려보자. 당신이 아까 말한 것 중에서 자동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있었는데, 그림은 자동으로 오브제가 되는 거고, 미술사를 반영하는 것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기 때문에 당신이 그림을 그리는 거다, 그런 말을 했는데, 그럼 님은 어떤... 작품으로 드러낼 수 있는 문제의식이 있고, 그것은 당신의 그림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스스로를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자? 로 위치 시킨다는 느낌이 있었다.
서 : 뭐 그렇지. 업데이트 된 것을 그린다고 해야 하나? 그런 현상을 그려본다고 해야 하나.
황 : 그럼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작업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드러내려고 하는, 그런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사실 그렇게 자동적으로 드러낸다고 쳤을 때, 합이 맞을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제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그 부분은 아예 상정하고 있지 않고 있었던 건가?
서 : 이런 말하면 좀 그렇지만, 아직은 내가 문제의식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나는 그냥 따라가고 있는 거고, 내가 충분히 따라잡는다면 그 이후부터 주장을 하겠다는 마음은 있다. 근데 나는 내가 뭔가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황 : 아 그런 건가? (웃음)
서 : 그런 거다. 그러니까 작업도... 이런 걸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지금은.
황 : 전체적으로 되게 잠정적이라는 느낌이 있다.
서 : 날 인터뷰해도 되는 건가?
황 : 그럼 뭐 아무튼... 오브제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계속 했었다. 나는 그게 지금 회화에서 주류적인 문제의식인 것 같은데, 당신이 그걸 무시하고 오히려 그리는 쪽의 그림으로 들어가버린 게 재밌다. 그림이 오브제가 되었다고 일단 인식은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졸업 작품을 통해서 그걸 드러낸 것이고. 근데 그 주제를 계속 다루어 보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왜인가? 어쩔 수 없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문제의식을 포기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서 : 글쎄. 나는 그게 그냥 받아들여야 할 변화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다 오브제라면, 사실 그림보다 멋진 오브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리고 지금 그림은 멋진 오브제도 아닐 뿐더러 멋진 평면도 아니고. 내가 아무리 잘 만들어봤자 그냥 멋진 오브제일 뿐인걸.
황 : 그게 좀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건가?
서 : 억울하다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럴 바엔 그냥 흥미로운 평면을 만드는 게 나에게 더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거다. 그렇다면 캔버스는 앞으로 뭐지? 라는 의문을 가지고는 있는데, 오브제로 계속 나아간다면 나는 어느 시점에서는 캔버스를 떠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그림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지. 나는 그래도 일단 회화에 대해서 생각을 더 많이 해보고 싶다. 미련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황 : 그럼에도 회화적 회화를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건 왜인가?
서 : 왜일까?
황 : 그것도 당신이 줄타기라고 말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서 : 그것도 있고. 음... 오브제도 그렇고 페인터럴리도 그렇고 극과 극이지 않나.
황 : 뭘 선택하기에는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았다 뭐 그런 건가?
서 : 그런 건 아니고. 나는 페인터럴리로 나갈 생각은 없다.
황 : 그게 이상한 것 같다. 그림은 그리고 싶은데...
서 : 그림을 그리고 싶다기보다는...
황 : 따옴표 친 그림은 그리기 싫고.
서 : 모르겠다. 아직은 해상도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가?
황 :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사실 나는 뭔가 붓질을 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요새 어떤 비판성을 획득할 수 있느냐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계속 그걸 한다는 게... 아무튼 뭔가를 포기한 상태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서 : 포기? 뭐 오브제나 페인터럴리를 포기한 것이겠지.
황 : 그럼 도태될 것이라는 위험 같은 건 못 느끼는가?
서 : 도태된다면 무엇으로부터?
황 : 최근의 경향으로부터. 그런 최신의 문제의식을 좀 더 직접적으로 탐구하는 방향에는 관심이 아예 없나?
서 : 전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게, 그건 경향들일 뿐이지 않은가. 내가 극과 극이라고 말은 했지만... 거기에 앞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 주장하는 바가 다른 것 아닌가?
황 : 그래도 나는 좀비 페인팅이라고 불리는 그것들이 기존의 회화를 완전 대체해버렸다고 보았다. 당신이 하고 있는 행위는 어쨌든 기존에 회화라고 불렸던 것을 지속하려고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서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좀 웃긴 얘기지만, 두번째 작업도 그 작업 하나에서 끝났다. 만약 그게 시리즈로 간다면 그건 당신 말처럼 되는 거지.
황 : 아 아직은 탐구하고 있는 중이라서...
서 : 탐구라기보단, 그건 그냥 거기서 끝난 거다. 나는 그렇게 그림을 계속 그려나갈 수가 없는 거다.
황 : 그것도 독특하다. 회화하는 사람들에게 연작은 약간... 밥줄 같은 느낌이잖나.
서 : 그렇지만 회화가 아니니까 연작을 하는 것도 웃긴 상황 아닐까?
황 :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김민애 씨를 레퍼런스로 말한 게 납득이 간다. 뭔가... 캔버스를 두고, 위에 붓질을 해서, 당신은 약간... 조각적인 현상을 만들고 있는 셈이네?
서 : 그렇다. 굳이 나는 형태로서 조각이라고 선언할 필요까진 없다는 거지. 그냥 꾸준히 캔버스를 사용하더라도 나는 충분히 그걸 할 수 있는 환경이 됐기 때문이고. 그리고 붓질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그건 프린팅이지. 어떻게 보면.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아무튼 그렇게 생각한다.
황 : 그렇군요. 그럼 프린터를 사용할 생각은 없나? 아까 해상도를 얘기한 것도 그렇고 지금 붓질을 하는 게 프린팅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 것도 그렇고.
서 : 붓질을 하는 게 편해서 아직은 붓질을 하는 것도 있다.
황 : 그럼 앞으로 해상도라고 말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맥락에 맞으면 프린터를 쓸 수도 있겠다.
서 : 맥락에 맞으면. 근데 해상도라는 걸 얘기할 때, 붓질과 프린팅의 관계를 얘기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붓질로 하는 게 더 재미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황 : 최소한 이상할테니까?
서 : 그렇다. 최소한 이상할 거고 최소한 좀 웃길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황 : 웃긴 건 중요하지.
서 : 웃긴 건 중요하니까.
황 : 그럼 요새 좀비 페인팅 하는 사람들 작업 중에 참고할 만하다고 보거나 아니면 재밌다고 생각한 작업이 있었나?
서 : 직접적인 경우는 없는 것 같다. 토바 아워백은 재밌다.
황 : 그 분은 요새 3D 프린터로 작업하고 계신 것 같던데.
서 : 제일 멋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은 뭔가...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아 저 곳에 저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중요한 참고가 된다.
황 : 차승언 작가 작업은 본 적 있나?
서 : ‘내가 언젠가는 저런 작업을 하게 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황 : 어떤 측면에서?
서 : 하도 캔버스에 대해서 집착 같은 걸 하다 보니까. 그리드에 관한 생각도 많이 했었고.
황 : 그리드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
서 : 캔버스라는 건 천이지 않나. 이미 천인 순간부터 좀 이상한 것 같았다. 천에다 그림을 그린다는 게. 지금 이 시대에는 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옛날에 캔버스를 전시했을 때 그게 정말 평면으로서 받아들여졌다는 것도 사실은 좀 신기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건 이상한 일인 것 같다. 캔버스만큼 오브제 같은 건 없지 않나. 뒷면도 있고, 심지어. 나무로 되어 있고. 그런 것에 있어서, 그걸 정말로 끝까지 해체한다면, 직조 같은 것 아닌가. 그래서 한번 해체해 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건 아까 말했던, 첫번째 작업의 양 갈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후자로 가서 그걸 안 하게 되었다. 캔버스를 뒤집어볼까? 그런 생각도 했었고. 예전에 어떤... 부부 작가였나?
황 : 로와정? 아, 그 분들이 갤러리 팩토리 전시에서 그런 작업을 하셨었다.
로와정, 2014년 갤러리 팩토리 전시 <그 정도 거리> 전경. 사진 출처 월간미술 http://goo.gl/nhd5p5
서 : 그걸 보고 아 저거 하려고 했던 거였는데... 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걸 다 넘기고 내가 두번째 작업을 한 거였다. 하여튼 캔버스를 해부해보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황 : 마지막 전시 이후로 작업을 한 1년 쉬었던 것으로 안다. 앞으로 어떡할 건가?
서 :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황 : 드로잉이라든지... 작업을 시도해 본 적도 없었나?
서 : ‘음 큰일났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약간 손을 놓고 있었다. 정말로 시리즈로, 연작을 하기에도 웃기고, 연작을 안 하기에는 다음 걸로 어떻게 넘어가야할지 막막한 걸 해버렸다. 왜냐하면 조토를 그려버렸는걸. 더 이상 뭘 어떻게... (웃음) 이제 그린다기보단 다른 걸로 넘어가야 할 수도 있겠지. 이런 시점에서는. 근데 그린다는 걸... 아직은 고려해보고 싶다. 예전에 얘기했듯이 해상도 작업을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막히기도 하고.
황 : 해상도에 대한 작업이라면 망점 회화와 관련된 얘기인가? 그건 또 아닌가?
서 : (침묵)
황 :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듣고 넘어가겠다. 그럼 <오늘의 살롱> 전시는 보았나?
서 : 다들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황 : 뭐가 되었든 작업을 빨리 재개해야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 : 사실 다들 해버려서 오브제 작업을 못할 것 같은 점도 있다. 이미 늦어서.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황 : 나도 그만두고 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