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처럼 생긴 무언가에 관하여 : 황웅태 인터뷰]
# 2015년 5월 12일
물어본다 황재민 (이하 민) : 그럼 일단 학교 다닌 이야기부터 해볼까? 아직 졸업은 안 했나?
답한다 황웅태 (이하 태) : 그렇다.
민 : 다녔던 학과가 어디였나?
태 : 아트앤시어터라고... (웃음) 이 얘기부터 시작하는구나.
민 : 당신은 그게 좀 독특하니까. 왜냐하면 (계원예대) 아트앤시어터라고 하면... 김성희 선생님이 계셨고. 거기서 주로... 뭐 리미니 프로토콜이나, 티노 세갈이나, 뭐 이런... 컨템포러리의 후광을 뒤에 업은 퍼포먼스적인 경향을 주로 다뤘으니까. 거기서는 어떤 결과물을 만든 게 없었나?
태 : 작업을 했었던 거?
민 : 그렇다.
태 : 있었다.
민 : 그건 어떤 종류였나?
태 : 그때는... 한 학년 위의 선배가 김성희 선생님이 예술 감독으로 계셨던 페스티벌 봄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었었는데, 퍼포머로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무대가 산이었고 관객석은 굉장히 멀리 떨어져있었는데, 그 공연에 참여한 퍼포머, 스텝, 관객들과 공연을 재구성했었다. 그거 하나 하고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했던 것 같다.
민 : 스스로 작업한 건 없었나?
태 : 그게 스스로 작업한 거였다.
민 : 퍼포머로 참여한 게 아닌가?
태 : 퍼포머로 참여한 다음에 그 경험을 갖고 작업을 만들었었다. 퍼포머의 시점으로.
민 : 그건 과제로 냈었나?
태 : 과제로 만들었던 건 아니었는데 과제로 많이 사용했다.
민 : 그럼 학교 다닐 때 영향 받은 작가라던가... 관심을 갖고 있던 작가는 있었나?
태 : 그때는 제롬 벨에게 많이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민 : 어떤 측면에서?
태 : 측면이라고 부를 것까진 없는 것 같고, 과 특성상, 그리고 학교가 2년제이기도 하고. 역사 같은 것에 대해서 가르치는 수업이 딱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 수업도 선생님의 주관 같은 게 무척 많이 들어가 있는 수업이었다. 그러니까... 역사 수업을 할 때도, 그 당시의 시점으로서 역사를 서술하는 게 아니라 ‘컨템포러리’한 시점으로서, ‘컨템포러리’라고 설명이 가능한 역사를 다루는 수업이었거든. 그래서 결국 수업이 어떻게 돌아갔냐면, 그냥 작업을 많이 보여준다. 그럼 학생들이 그걸 보고, 그 작업들이 갖는 공통 분모 같은 것을 시각적으로 체득을 하기 시작한다. 그럼 제일 위험한 게 그걸 이제, 그 코드들을 반영하는 작업들을 학생들끼리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다. 그때 있었던 특징들을 제일 많이 담보하고 있었던 작가가 제롬 벨이었던 것 같다. 그 점에서 내가 영향을 받았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고.
민 : 그럼 그런 수업에선 어떤 작가들을 많이 다루었나?
태 : 제일 많이 다룬 건 제롬 벨이었고. 티노 세갈은 의외로 많이 안 다뤘다. 그냥 블랙박스에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 공연들을 많이 보여주고, 화이트 큐브에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들에 대해선 거의 언급을 안 했던 것 같다. 의외로. 실제로 졸업 전시를 하는 사람들도 화이트 큐브에는 관심이 없었고.
민 : 그럼... 그런 어떤, ‘컨템포러리’한 미술을 다루는 수업을 듣고, 그런 교육과정을 거쳤는데, 그 이후에 집단오찬 이름으로 학교에 전시를 열었을 땐 회화 작업으로 넘어갔었다. 그렇게 넘어간 계기는 무엇이었나?
<메타몬의 워밍업>, 2014, 캔버스에 아크릴, 34 x 44cm
“메타몬은 세포 단위의 변신이 가능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어리숙한 괴물이다. 눈 앞에 있는 것으로 변신을 할 경우에는 놀라운 정밀도의 모방이 가능하지만, 기억에 의존하는 순간 이것저것이 뒤섞여 난잡해지기 일쑤다.
그런 메타몽이 아크릴을 발견했다. 심심해서 캔버스에 들어갔는데 퍽이나 편했다. 그리고 변신과 함께 학습을 시작했다.”
태 : 회화로 넘어간 계기라기보단, 공연 작업을 하면 안 되겠다는 계기가 있었다.
민 : 설명을 좀 해주면?
태 : 방금 했던 이야기와 연장선 상에 있는데, 선생님들이 작업을 보여줄 때 도식화해서 많이 보여준다. 많이 언급되는 게 장소특정성, 아니면 뭐 들뢰즈의 ‘되기’. (웃음)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럼 이제 내 입장에서는 역사적인 맥락이랑 연결이 되지 않고, 걔네들만 둥둥 떠있으니까. 이걸 가지고 뭘 하면 안되지 않나. 근데 시각적으로 뭔가를 배운다는 게 굉장히 무서워서,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면 진짜로 그런 것만 나온다. 그래서 (배운 것을) 하면 안되었던 거다. 그래서... 내가 현재로서 할 수 있는 대안이, 미술사 공부를 조금이나마 하는 수밖에 없었고, 나에게 제일 접근성이 있었던 매체가 회화였던 것 같다.
민 : 그럼 회화 작업을 처음 했을 때, 말하자면 일본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아서 작업을 만들지 않았나. 그 작업에 대한 설명을 좀 해달라.
태 : 설명하기 전에, 사실 나는 서브컬처의 영향을 많이 받진 않았던 것 같다. 그 작업 자체가 서브컬처와는 연관이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일단 <포켓몬스터>에서 메타몽이라는 캐릭터를 참조하기는 했지만, 도상으로도 그렇고, 작업 하면서 <포켓몬스터>라는 콘텐츠 자체를 의식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면. 그땐 조금 갈팡질팡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때 했던 작업은 ‘메타몬’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설정을 하고, 나는 그 캐릭터를, 아니 그러니까... 캔버스 위에 칠해지는 물감은 ‘메타몬’이라는 가정 하에, ‘메타몬’의 놀이? 아니면 행동 같은 것들을 내가 그림으로써 그렸다, 라는 식의 설정이, 구조가 생기는 건데... ‘메타몬’일 경우엔 내 입장에선, 무엇이든 해도 상관 없다는 구실에 가까웠던 것 같다.
민 : 아, 그럼 서브컬처적인 요소는 알리바이고, 그냥 어떤... 개인적인 서사화의 장치로 인용을 했다, 뭐 그런...
태 : 개인적인 서사화의 장치였던 것 같다. 서브컬처가 아니라.
민 : 그러면 그냥 정말 그림이었네? 어떤, 특정한 맥락을 스크린에 투과해서 뭔가를 만든다기보다는?
태 : 그렇다.
민 : 그러면 그게, 이야기로 듣기로는, 컨템포러리 미술의 주입식 교육에서부터 (웃음) 탈피하기 위한 개인적인 계기였던 것 같은데... 그럼 그 그림 이후에 어떤 생각을 했나? 그림을 완성한 다음에?
태 : 일단 내가 다니던 과에서는 담론의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았다. 대표적인 작업 형태가 담론적 장소특정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공연을 기획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 개입을 해가지고, 그 상황을 리서치하거나 거기에서 어떤 메세지로 도출 가능한 요소 같은 것들을 경험한 다음에, 이걸 공연으로 도식화하는 훈련을 꾸준히 받는다. 물론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그런 것들을 완전히 놓아버릴 수 있는 계기는 됐다. 확실히.
민 : 아 뭔가 깨달음이 있었나? 아 이런... 컨템포러리 확실히 망했구나... 뭐 이렇게 느끼는?
태 : 깨달음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러기 위해서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작업은.
민 : 그럼 그 작업 다음에 연작처럼 만든 작업은 없나?
태 : 한 건 없지만... 한 건 없다.
민 : 뭘 해보려고는 했었나?
태 : 그렇다. ‘메타몬’은 아직 내가 포기한 소재는 아니다.
민 : 아, 연작으로 만들어 볼 계획은 있는 건가?
태 : 그렇다.
민 : 그럼 연작들은 어떤 모양이 될 것 같은가?
태 : 음... 특별히 하려고 했었던 건 없고, ‘이걸로는 할 수 있는 게 많겠다’라는 생각은 든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나의 경우에는 캔버스에 바를 수 있는 재료를 ‘메타몬’으로 설정을 한 거니까. 그 활동 장소 자체가 내가 다루는 대상 같은 것들이 되는 거잖나. 일단 여기에서 출발을 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저번에 그렸던 그림은 그 중 하나고. 그래서 ‘그리기’라는 것 자체도 나에게 별로 의의가 없었다.
민 : 그럼 그 작업 이야길 들어보면, 뭔가 개인적인 서사 충동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럼 그 충동을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 작업을 했던 것도 있었던 건가?
태 : 서사 충동?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야기를 만드려고 하는 욕구는 없었지만, 거기서 뭔가를 하면은 그게 자연스럽게 서사의 타임라인으로 진행은 되겠지. 그래서 ‘메타몬’이라는 소재를 내가 쥐었을 때, 이게 어떤 방향을 잡기에 괜찮은 소재인 것 같았다.
민 : 근데 그렇게 되면, <포켓몬스터>라는 매체 안에서 메타몽이라는 캐릭터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니까. 그 의미를 왜곡되고 확장된 형태로 회화로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서브컬처와 연관되는 지점은 어느정도 가져갈 거라는 생각을 한다. 결국 하다보면 <포켓몬스터>라는 미디어 자체와도 많이 연결이 될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서브컬처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잘 이해가 안 된다. 그 점을 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태 : 사실 그때는 갈팡질팡 했었던 건데, 나의 경우엔 <포켓몬스터>에 대해서 엄청난 향수 같은 걸 느낀다. 그래서 <포켓몬>으로 뭔가를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내가 하려고 했었던 건 그런 서브컬처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었고. 그래서... 서브컬처에서도 메타몽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회화에 도입하기 제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을 했었던 건데, 그 이름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연결 지점이 생기지 않나. 그래서 ‘이름을 바꿀까’ 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민 :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세일러 문>이라든지 90년대의 미디어들이 미술에서 활용되고 있는 게 있다. 뭐 그런 종류의 어떤, 향수나 레트로적인 감수성이 드러나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종류의 감수성과도 관련이 되는 게 있나? 메타몽이라는 소재는?
태 : 없다.
민 : 아예 없나? 그럼 결국 진짜 도구였던 셈이네.
태 : 그렇다. 아무튼 나는 그 병치 자체가 이상했다. 메타몽과, 발라지는 물감이라는 게.
# 2015년 5월 19일
민 : 졸업 작품은... 그게 아크릴을 벽에 발라서, 본을 뜬 다음에 캔버스에 붙이는 작업이었나?
<흰 벽화 시리즈, Untitled 1, 2>, 2014년, 계원예술대학교 정보관 8층 공통강의실, 비상계산 6층에서 7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배치
태 : 붙이거나, 아니면 캔버스에 아크릴을 바른 다음에, 벽을 본뜬 것을 캔버스 위에 붙인 다음에 말리는 것. 그리고 떼어내는 것.
민 : 아크릴의 물성에 관해서 뭔가 작업을 하고 싶었던 건가?
태 : 아크릴의 물성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서부터 출발을 한 건 맞다.
민 : 그럼 거기에 벽이라는 게 개입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태 : 그 당시에는 일단... 졸업 작품이다보니 기한이 정해져 있었고, 내가 기획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을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때 일단은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 지 불가능한 지의 여부를 확인을 해야할 단계라서, 공간을 먼저 본떠 보는 것을 시도했었다.
민 : 그럼 본을 뜬다는 아이디어가 처음에 있었고, 본을 뜰 대상으로 좀 만만한 걸 골랐다, 이 정도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회화 자체를 벽으로 취급해보고 싶었던 건가?
태 : 그런 것도 있었다. 일단 공간을 본 뜨는 것보다는, 그땐 타일이라는 단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이은우 작가 리서치를 과제로 했었는데, 보면서 공통 분모 같은 게 있지 않나 싶었다.
민 : 그 공통 분모라는 것을 좀 설명해달라.
태 :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
민 : 이은우 작가 작업 중에는... 정보를 어떻게 미술로 만들 것이냐의 문제가 개입을 한 작업들이 있지 않나. 사실을 어떻게 사실로서 다룰 것이냐, 이런 생각도 들고.
태 : 그렇다.
민 : 그런 부분에서 영향을 좀 받았던 건가?
태 : 어떤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시각화하는 작업 보다는, 그... 스티커 가지고 했었던 작업? 레디메이드 공산품으로서의 단위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모습에서 비슷한 점을 찾았던 것 같다.
민 : 그럼 회화를 레디메이드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졸업 작품 할 때 있었던 건가?
태 : 그렇다. 캔버스 자체도 타일과 유사한, 아니면 타일이라는 단위로 포착 가능한 단위로 취급하려고 했었다.
민 : 읽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저번에 서지현 씨와 인터뷰 했을 때는, 그 분은 무조건 ‘그리기’로 본인이 처한 어떤 상황을 돌파... 돌파는 아니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뭐 대충 그런 의식이 있었는데, 당신은 반면에 집단오찬 전시에서는 그리기를 해보았다가, 그 다음에 졸업 작품을 할 때는 그리지 않고, 아크릴의 물성을 활용해서 캔버스를 구성하지 않았나. 그 사이에서 어떤 변환 같은 게 있었다면 어떤 내용이었나?
태 : ‘메타몬’ 작업을 할 때도 물성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었다. 근데 그 물성이, 그리기로써 묘사가 되는, 포착이 되는 물성이었는데, 그때 내가 설정한 가상의 캐릭터로서의 ‘메타몬’은 무엇이로든 변할 수 있고 그려진 대상, 그려지는 방식 자체가 ‘메타몬’의 변신이었다. 그런데 ‘메타몬’일 경우에는 그리기로 일단 나타났던 거고, 졸업 작품일 경우에는 아크릴의 물성만으로도 구현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일단 그게 연작이기는 하다. 물성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다.
민 : 그러면 그 벽 작업들도 ‘메타몬’이라는, 당신이 만든 세계관의 한 부분으로서 자리하는 건가?
태 :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근데 그게 작업으로 구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민 : 일단 생각만 해두고 있었던 건가? 나중에 써먹을 만하다 싶으면 써먹으려고?
태 : 그때 졸업 작품을 하면서 ‘아 내가 물성에 대한 관심이 있었구나’라는 연장은 느꼈다. 작업을 하고나서 이것도 ‘메타몬’이라는 세계관으로 포함시키는 게 가능한 기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민 : 조금만 더 설명을 해달라.
태 : 되게 막 나가는 이야기긴 한데, ‘메타몬’이란 것은 아크릴 자체였다.
민 : 풀어서 좀 설명해줄 수 있을까?
태 : ‘메타몬’ 작업할 땐 망상력이 폭주를 해가지고, 그때 적립되었던 ‘메타몬’이라는 구조 자체가 되게 허무맹랑하기도 하고... 오히려 제약 조건이 없었던 것 같다. ‘메타몬’이라는 설정만 있는 거고. 그래서 아크릴을 통해서 뭔가를 재현할 때, 한번 ‘메타몬’이라는 설정으로, 그 재현되는 대상을 걸러주는? 그런 기능을 했다. ‘메타몬’이.
민 : 그럼 당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어떤 회화적인 구성이 있고... 그것에 ‘메타몬’이라는 필터를 장착한 거고, 거기에 투과되어 나온 것이 아크릴이라면, ‘메타몬’이 필터로서 작동하는 방식에 당신이 고려해두고 있었던 원리 같은 것은 있나?
태 : 원리라기보다는...
(중략)
태 : 졸업 작품때 했었던 작업 같은 경우에는, 아크릴과 유화가 엄청 다르지 않나. ‘뭐가 더 회화적이냐’라고 한다면 나는 유화인 것 같다. 그런데 일단 아크릴로는 본을 뜰 수가 있으니까. 어떤 대상의 양감을 복제한다는 것? 혹은, 그 대상 자체를 본을 떠서, 그 대상이 가지고 있었던 양감 전체를 그대로 복사한다는 것은 조각에서 있었던 발상이고... 뭐 조각가들이 뭔가를 본을 뜨고 복제를 하듯이, 그런게 아크릴로도 가능하기는 하니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민 : 임근준 씨가 일전에 트위터에서 조각적 회화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 당신도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있었나?
태 : 애초에 아크릴에 조각적 성격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민 : 그럼 굳이 캔버스를 사용한 것은 이유가 무엇이었나? 캔버스를 사용함으로서 어쨌든 회화라는 맥락을 인용했는데. 거기엔 어떤 이유가 있었나?
태 : 회화적인 걸 인용했다기보다는, 애초에 아크릴이라는 것은 회화의 기본적인 재료이지않나. 그런데 아크릴 자체가 무언가를 본뜨는 데 적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오히려 조각적인 성격을 인용한 것에 가까운 것 같다.
민 : 헌데 캔버스라는 게 서포트로서 확실히 있었다. 아크릴 판을 사용한다던가, 캔버스 자체를 바꾸지 않고 그 위에 본뜬 것을 부착해서 모양을 만든 데에는 회화라는 맥락과 관련해서,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태 : 모르겠다. 작업하면서 회화를 인용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민 : 그럼 작업을 할 때 어떤 생각을 했나?
태 : 일단 조건이 중요했다. 머릿속에서. 회화의 제일 기본적인 도구는 그대로 사용하자라는. 캔버스랑, 아크릴이랑, 붓.
민 : 붓도 사용했나?
태 : 그렇다. 다 붓으로 본뜨고 붙인 거다.
민 : 그 위에다 약간 회화적인 터치를 가미한 작업도 있었지않나?
태 : 덧그린 건 없었다.
민 : 나는 ‘메타몬’ 작업을 처음 보고 아 이건 회화적 회화를 시도한 건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아예 없었던 거네. 그럼 그건 아크릴의 물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뭔가 덕지덕지 처바르고 레이어를 만든 것일 뿐, 회화적인 회화라고 말할 만한 바는 없었던 건가?
태 : 회화적 회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뭐라고 해야 하지? 붓질 하나하나가 굉장히... 생동감이 있잖나. 특히 그런 경향은 붓질 하나하나가 입체적인 유화에서 더 두드러지고. 근데 나의 경우에는, ‘메타몬’ 그림을 그릴 때 생겼던 붓질 위에 그 붓질을 다시 한번 재현하는 식으로, 좀 더 납작한 이미지로 만들었었다.
민 : 그럼 뭔가 조각적인 방식으로 캔버스를 구현해야겠다는 모티브를 얻은 건 어디서부터였나? 만약에 ‘메타몬’ 작업을 할 때부터 그런 생각이 전제가 되어있었다면. 아니면 딱히 그런 의식은 없었나?
태 : 있었다. ‘메타몬’ 작업을 할 때도, 캔버스는 ‘메타몬’이라는 캐릭터가 놀거나 무언가로 변신을 할 수 있는 장소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진짜로 오브제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 뭔, 이상한 생각을 할 때는, 메타몬이 캔버스를 나오는 상상도 했었고.
민 : 그럼 막 정말 뚫고 나오는 것처럼 이렇게... 부조처럼 튀어나오는 건가?
태 : 그때도 졸업 작품 때 했었던, 그런 방법을 염두하고 있었는데... 그런 걸 상상했었던 것 같다.
민 : 그러면은, 이전에 서지현 씨를 인터뷰 했을 때는, 레퍼런스를 물었을 때 김민애 작가와 제니조 작가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당신 같은 경우엔 작업할 때 레퍼런스로 삼았던 작가들이 좀 있었나?
태 : 없었다.
민 : 이은우 작가 얘기 좀 했었지 않나.
태 : 이은우 작가 이야기는, 아까 얘기 했듯이 작업을 하다가 이은우 작가 리서치를 해보니까, 재현 대상의 성격? 에 대한 관심사는 비슷하구나 싶었다.
민 : 뭐라 그래야 되나, 물건에 대한 관심사였던 건가?
태 : 아니, 표면에 대한 관심사였다. 그때는 타일이라는, 공간을 구성하는 단위에 대해서 흥미가 좀 있었다.
민 : 어떤 방식으로 있었나?
태 : 예측 가능하겠지만, 학교 다니면서 졸업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장소특정적 맥락으로 읽는 사람이 되게 많았다. 근데 사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는 게, 작업이 본을 뜬 대상을 지시하게 되니까? 그런데, 타일을 포착하고 타일을 재현한다는 것은 공간을 재현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타일이라는 게, 공간에 대한 장식적이거나 기능적인 단위인데, 그 공간의 표면에 진열이 되고, 그걸 내가 본뜬다고 했을 때, 이곳과 비슷한 또다른 저곳을 상정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타일 같은 것들은 어디에든지 배치될 수 있고 어디에든지 가미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 장소특정적으로 읽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민 : 그런데 그런 건 전혀 아니었던 것 같다.
(잠시 멈춤)
민 : 이야기가 너무 맥락 없이 오고 가는 것 같아서 잠시 멈추었다. 아까 ‘메타몬’이라고 설명했던 단어가, 회화에서 어떤 물성을 상징하는 상징 체계로서의 어떤 큰 세계관이라고 얘기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건 추후의 작업에서도 계속해서 반영이 되는 어떤, 작업의 큰 맥락이 되는 주제인 건가?
태 : 그렇다. 메타몬이라는 소재를 내가 끌고 가는 한, 그 캐릭터 속에서 그리기와 양감을 본뜬다는 것, 그 둘은 결국 완전히 동등한, 수평적인 관계인 것 같다. 둘 다 메타몬이 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인 것 같다.
민 : “것들 중 하나”라면, 앞으로도 작업의 방법론이 변할 여지가 많이 있다는 뜻인가?
태 : 있을 것 같다.
민 : 그럼 지금은, 당신이 말한 메타몬이라는 세계관이 재현되는 방식이 어떤... 물질로서의 아크릴을 반영하는 캔버스, 라는 형태로 많이 재현이 되고있지않나. 이 부분은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이 될 듯 한가? 뭔가 형식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두고 있는 게 있나?
태 : 아크릴이 리넨 천을 대신하게 되는 것? 아크릴만으로 리넨 천의 질감까지 재연할 수 있으니까, 결국은 아크릴 자체가 천의 모양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아크릴로) 리넨 천을 본뜬 다음에, 거기에 그리는 식으로 본을 뜬 다음에 캔버스에 붙이면 그건 프린팅 된 것처럼 납작한 이미지가 리넨 천을 대신해서 붙어있는 거지.
민 : 그럼 그 아래에서 리넨 천을 (아크릴로) 본뜬 모양도 드러나고.
태 : 완전히 드러나고. 표면은 프린팅 된 것과 똑같이 생겼을 거다.
민 : 프린팅이라고 말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저번 인터뷰에서도 프린팅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서지현 씨의 경우에 프린팅이라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를 프린터로 비유하고, 어떤 경향을 대신하는 수동적인 위치로서의 작가로 자신을 위치시켰는데, 당신의 경우에 프린팅은, 동일하게 비유적인 관계를 가지긴 하지만 어떤 물성을 제시하는 단어이지않나. 그러면 당신은 무언가를 대신해서 발화하는 수동적인 위치로서의 작가... 라는 화두는 주제 삼고 있지 않는 건가?
태 : 듣기로는 비슷한 것 같다.
민 : 그럼 당신에게도 스스로를 수동적인 위치로 자리해놓는, 그런 게 있는 건가?
태 : 그렇다. 메타몬 작업은 애초에 그런 맥락이니까.
민 : 당신은 메타몬의 대행자라는 느낌으로. 알겠다.
태 : 그런데...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프린팅 된 이미지는 정말로 납작하다. 그리고 이게 프린팅 되었다는 것을 정말로 알 수 있다. 내가 만든 것도 그럴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천 질감의 아크릴이니까... 그려진 붓터치 하나하나가 다 쌓여있다고도, 실제로는 쌓여있는 건데, 그게 납작하게만 드러나는 거니까. 모르겠다. 뭔가 좀... 상상만으로는 납작한데 엄청... 뭔가 두껍지 않을까 싶다. 이상하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이윤성 작가의 작업을... 본을 뜨는 식으로 내가 그린다면, 그리는 것보다 훨씬 쉽게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 이윤성 작가가 엄청 납작하게 모에 그림을 그리지 않나. 포토샵으로 그린 것처럼? 근데 그게 ‘그렸다’는 점에서 그 납작한 물질성들이 강조가 되는데, 캔버스를 본뜬 다음에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나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본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민 : 왜 하필 이윤성 작가였나? (그림이) 아름다워서?
태 : 그려서 납작하다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의 공간을 연상케 하는) 차력이?
민 : 그런가. 헌데 납작함이라고 하면은 사실... 일전에 커먼센터의 트위터 계정에서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지금의 회화들이 갖는 공통된 특성이기는 하다. 그런데 하필 이윤성 작가가 그런, 당신의 새로운 방식에 참여를 할 수도 있겠다고 망상을 한 것은, 그 분이 납작함을 잘 활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인가?
태 : 그런 것 같다. 사실 커먼센터의 <오늘의 살롱>에 걸렸던 그림들에서 종종 감지할 수 있었던 납작함은, 뭐라고 해야 하나, 애초부터 해상도가 낮은 대상인데, 그게 재매개되고 열화된 이미지를 다시 한번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데 그럼으로서, 재현한 대상이 재차 열화되고 있다는 느낌? 그런 점에서 이윤성 작가의 납작함과 다른 납작함이 구별되는 것 같았다.
민 : 그럼 최근에... 회화의 귀환이라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텀블러 같은 데서 뭘 찾아봐도, 정말 회화 작업 밖엔 없다.
태 : 나는 텀블러를 안 해서 잘 모른다.
민 : 아무튼 외국의 젊은 작가들이 회화 작업을 참 많이 하는데, 그런 작업을 찾아본 적 있나?
태 : 없다.
# 2015년 5월 25일
민 : 이번엔 당신이 만들고 유지해나갈 세계관? 그런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기로 했다.
태 : 집단오찬 전시에서 했었던 작업일 경우에는... 일단은 그리기로 작업을 했었었는데, 그 이후에 졸업 전시에서 했었던 작업일 경우엔, 내가 메타몬은 결국 아크릴이다... 라는 식으로, 저번에 되게 투박하게 이야기를 했었다. (졸업 작품은)좀 더 구체적인 형태를 얻을 수 있는... 시도 중 하나였고, 실제로 거기서 뭔가를 얻어간 것 같다. 그러니까... 좀 더 순화해서 얘기를 해야할 것 같은데, 저번에 ‘메타몬은 아크릴이다’ 라고 했던 얘기는 결국에는 내가 아크릴을 써서 메타몬을 그리는데, 그리기로써 내가 집단오찬 작업에서도 대상을 확정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결국에는 캔버스에 발라지는 무언가 자체가...
민 : 어떤 세계관 속의 생물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태 : 그렇다.
민 : 졸업 전시에 걸었던 작품도 동일한 논리고.
태 : 그렇다. 그런데 집단오찬 전시의 경우에는 단순하게 그리기였을 뿐이었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드러나는 게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에 졸업 전시 얘기로 넘어가면, 아직 메타몬과는 접점이 없었다. 거기에 아직 메타몬이라는 이름도 붙이지 않았었고. 그냥 액상 실리콘을 사용해서 아크릴에 조각과 비슷한, 재현하는 대상의 표면 같은 것들을 따오는 시도를 했었던 건데, 거기에서 앞으로 할 작업과의 연속성은... 그리는 방식으로, 동시에 아크릴의 조각적인 요소 같은 것을 담보할 수 있었다는 점? 여기에서 앞으로 좀 비빌 구석 같은 것들을 좀 찾아볼 것 같다.
민 : 그럼 뭐... 그리는 것은 계속 사용할 건가? 작업을 유지하는 도구로써?
태 : 그리기라는 말보단 붓질이 좀 더 적합할 것 같다.
민 : 그렇다면 회화적 회화를 의태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건가?
태 : 아니, 그런 요소가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말로 하니까 좀 복잡한데, 결국 내가 어떤 대상을 본을 뜬 것에, 아크릴을 써가지고, 표면을 재현한 다음에 뜯어내거나 캔버스에 붙인다는 자체가, 본뜬 것에 아크릴을 바르는 일 아닌가. 그걸 바를 때 나는 붓을 사용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이미 그리기, 혹은 붓질이 들어가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뜯어내서 캔버스에 붙여놓았을 때는, 그 본뜬 것의 표면 같은 것이 그대로 따라오게 되지 않나. 그런 점에서 아크릴이 가지고 있는 조각적인 성격이 붓질을 통해서 형태를 갖게 되니까. 그런 의미로 이야기를 했었던 거다.
민 : 직접적으로 들어간다기보다는, 작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구로 사용된다는 소리인가.
태 : (직접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민 : 그럼 작업을 진행해보아야 알 수 있겠다.
태 : 하여튼, 그때 집단오찬에서 했었던 작업이나, 졸업 전시에서 했었던 작업일 경우에는 앞으로 안할 것 같다.
민 : 그럼 앞으로도 작업이 많이 바뀔 것 같다.
태 : 그렇다. 일단 졸업 전시에선 공간을 본떴으니까...
민 : 이번에는 뭘 할지 생각 중인가?
태 : 생각을 하고 있다.
민 : 그럼 뭐, 세계관을 만들어서, 그 속에서 어떻게 서사화를 시킨다던가? 그게 전부 캔버스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것이지 않나. 그럼 이전의 회화와 지금 당신이 하려는 어떤, 그림처럼 보이는 무언가의 사이에 뭔가 단절되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인식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인식이... 있었나? 왜 기존의 회화가 성립되는 방식으로 당신의 방법론을 부착시키는 게 아니고, 약간... 다르게 해볼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나? 아니면 딱히 그런 건 없었나?
태 : 작업을 하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는데, 의식적으로 이렇게 하려고 했었던 건 아니어서.
민 : 하기는 집단오찬 전시에서도 그리는 걸로부터 출발을 했었지.
태 : 하여튼, 그리기가 아니라 어... 그려진 상태를...
민 : 재연하는 건가?
태 :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 그런 부분을 손댈 수 있을 것 같아서? 잘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민 : 아 아무튼 뭔가를 재연한다는 생각은 있는 거네?
태 : 맞는데, 재연하는 대상과 연결은 안될 것 같다.
민 : 그럼 어떤 역사적인 지시물을 참조하는 방향으로, 어떤 참조성을 작품에 좀 집어넣어 볼 생각은 없나? 그렇게 하면은 훨씬 뭔가, 어쨌든 회화라는 매체를 가져가는 게... 미술사의 큰 부분을 가져가는 거니까. 그게 당신 작업에 레이어를 집어넣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있다.
태 : 현재로선 아직 그럴 생각은 없다.
민 : 그럼 앞으로, 당신이 메타몬이라는 이름으로 아크릴을 여기저기 뿌려대고, 그것을 하나의 서사로 종합해서 묶을 때, 그런 역사적인 참조를 하게 될 수는 있겠네.
태 : 그럴까? 잘 모르겠는데.
민 : 너무 내 생각인 것 같다. 죄송하다.
태 : 다른 사람들이 그린 그림의 표면을 가지고 작업을 해보고 싶기는 했었다. 왜냐하면 수집할 수 있으니까.
민 : 수집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태 : 그 양감을? 그 사람이 내가... 그 그림의 표면을 액상 실리콘으로 본뜨는 것을 허락만 해준다면. 이건 다른 이야기긴 한데.
민 : 장기적으로 가져가볼 이런 저런 생각들은 있는 것 같다.
태 : 그렇다.
민 : 그럼 대충 이쯤에서 끝내면 될까?
태 : 그렇다. ///